정상순 제천교육지원청 정보지원팀장
[동양일보]그 시절 대부분의 어머니들이 그러하듯 우리 어머니 또한 대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던 것이 평생의 한이 되어 없는 살림에도 무조건 딸래미 대학 진학을 고집하셨다. 수시로 교사나 공무원이 되기를 바라셨던 어머니에게 나는“철밥통이 되기 싫어”라고 호기를 부렸지만, 막상 대학을 졸업하니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졸업과 동시에 나는 백수가 됐다.
국민에 대한 봉사 정신과 나랏일을 한다는 사명감보다는 백수 탈출을 위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도전한 공무원 시험에 단박에 합격해 얼떨결에 어머니에게 최고의 효도를 하게 됐다. 행정고시도 아닌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을 했는데 마치 가문을 일으켜 세운 양 온 집안이 떠들썩했다. 내가 공무원에 임용된 2004년은 지금과 달리 직업 선호도나 경쟁률이 뜨거운 신의 직장이었다. 하지만 어려운 관문을 통과했다는 기쁨도 잠시, 공문서 작성이란 난관에 봉착했다.
내가 작성한 공문서가 좀처럼 결재가 나지 않고, 팀장님께서 한참을 들여다 보고 계셨다.‘한글 맞춤법 검사’기능을 능가할 일명‘오타 감별사’이신 팀장님께서는 명성에 걸맞게 매사 꼼꼼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오랜 시간 결재가 완료되지 않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역시나 생각보다 많은 부분이 수정됐다.
점을 안 찍어서 지적을 받은 날도 있었다.‘숲을 보셔야지 자꾸 나무를 보신담? 그 놈의 점이 도대체 뭣이 중요해?’라며 속으로 투덜투덜거렸던, 숲도 나무도 제대로 볼 줄 모르던 나는 부끄러움도 몰랐다.
‘올바른 문서 작성은 정확한 의사소통을 위해 필요할 뿐만 아니라 문서 자체의 품격을 높이고, 그 기관의 대외적인 권위와 신뢰도를 높여준다.’행정안전부 행정업무편람에 나오는 내용이다. 하지만 아무나 대외적인 권위와 신뢰도를 높여줄 품격있는 문서를 작성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공무원이라면 잘 알다시피‘행정업무편람’이나 ‘행정업무의 운영 및 혁신에 관한 규정, 동 시행규칙’등에 용지 크기, 날짜 및 시간 표기, 항목 표기 등 공문서 작성의 일반 원칙들이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다. 맙소사! 내가 안 찍은 점은 그냥 점이 아니라 무려 법령에 등장하는 점이었던 것이다.
팀장님께서는 인내심을 가지고 가장 적합한 공공언어를 하나하나 선별하시고, 문장도 여러 번 다듬은 끝에 결재 처리를 누르셨다. 결재를 올릴 때마다 팀장님의 꼼꼼함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어느새 업무 능력은 서서히 향상되고 있었다.
“나무는 큰 나무 밑에 있으면 치여서 자라지 못하지만, 사람은 큰 사람 밑에 있으면 같이 큰다”라는 말이 있다. 그분은 개인 사정상 명퇴를 하시고 공직을 떠나셨지만, 그분께서 뿌린 씨앗들은 무럭무럭 자라 나무가 되고 울창한 숲이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