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숙영 시인, 시집 『이유는 묻지 않기로 했다』 출간

 

서산머리에 걸쳐진 노을이

!

넘어가기도 전

내가 먼저 어두워진다

낮 동안 오가던 길손 하나 없는 그 길 위로

어둠이 내린다

산 그림자 덮인 숲은 검고

내지리 골목골목을 어둠은 점령군처럼 장악한다

 

산보다도 숲보다도

사람들 마음이 먼저 어두워지는 이곳

온종일 뜨락을 오가던 냥냥이도

박스 안에 몸을 동그랗게 말고,

몇 되지 않는 집들의 창에 불빛이 하나둘 켜진다

읍내 번쩍이는 불빛들은 아득히 멀고

내지리 어둠은

숨소리조차 안으로 말려든다

낮 동안 소국은 홀로 벙글고

말 건넬 사람을 찾아 떠나지만

빈 버스 안

떠나는 이도 남겨진 이도 없이

붉게 익은 노을만 재를 넘으며 막 버스는 떠났다

 

산그늘이 깔리고

추적추적 비가 내리면

나도 같이 저물고

나도 같이 떠나고 싶어진다.

 

 

*내지리 : 횡성읍 내지리.

 

내지리*의 저녁은 읍내행 막차가 떠나며 온다전문

 

 

손숙영 시인
손숙영 시인

 

손숙영 시인의 시집 이유는 묻지 않기로 했다가 도서출판 상상인에서 출간됐다 이 시집은 1부 얼마간의 여백, 2녹아내리다 보면 끝 간 곳 어디쯤 닿겠지, 3부 겨우내 숨죽여 눕는 법을 익혔습니다, 4부 다시 안개에 가려도 등 총 4부로 구성됐다.

이성혁 문학평론가는 손숙영 시인은 가만히 정지해 있는 듯이 보이는 세계의 사물들은 기실 어떤 움직임을 묵시적으로 드러내고 있음에 시적 사유를 펼친다움직임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이루어진다. 움직임에 대한 사유는 시간에 대한 사유를 부른다. 시인은 일곱 편으로 이루어진 함묵含默연작에서, ‘함묵하는 세계의 사물들 안으로부터 시간의 흐름을 읽어낸다고 설명한다.

손 시인은  어디에도 안주하지 못하고 오랜 시간 밖을 배회했습니다/ 시는 나에게 떨치지 못하는 덫이기에 안으로 쌓아둔 시름들을 묶었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데 징검돌이 되어 내게로 와 준 시편들,/ 이제 세상 밖으로 보냅니다라고  시인의 말을 통해 전한다.

손숙영 시인은 2016출판과 문학에 모딜리아니 초상 외 4편이 선정되며 등단했다.

2018년 순암 안정복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한국문인협회 횡성지부 사무국장과 횡성문단편집주간을 맡고 있다.

환경교육 전문 강사로 활동중이다.

도복희 기자 phusys2008@d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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