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희 시인, 시집 『엄마 난 잘 울어 그래서 잘 웃어』 출간
한 몸짓이 생의 단면에
부딪히고 있다
유리벽에 무성한 나무 그림자와
쏟아지는 햇빛 사이로
날마다 찾아오는 새의 콩트르주르
작은 나뭇가지에 앉아 유리벽을 쪼며
창에 엉기는 햇살 서랍에 비밀을 기록하고 있다
캄차카와 아무르를 지나
새는 유리의 강을 건넌다
새가, 나를 닮은 새가
바람과 일렁이며 구름 따라 간다
투명하고 단단한 경계
새는 끝내 유리창을 이해하지 못하고 떠날 것이다
추운 곳에서 추운 곳으로 향하는
새들의 이동 경로를 이해할 순 없지만
해가 천천히 서쪽을 향해 돌아설 때
새의 행로가 경계를 넘어
죽음을 벗어난 세계로 이어지기를 바라본다
시 ⌜새를 바라보는 서쪽의 시간⌟전문
정선희 시인의 시집 『엄마 난 잘 울어 그래서 잘 웃어』가 도서출판 상상인에서 출간됐다.
이 시집은 1부 태양과 칸나 사이, 2부 춤에 가닿는 것, 3부 붉은 휘파람 불듯이, 4부 오늘은 아무도 나를 주워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등 총 4부로 구성됐다.
박동억 문학평론가는 “정선희 시인의 시는 서정적 원리, 즉 세계를 주관화해 표현하는 수사학적 원칙을 따르지만 동시에 서정적 배반, 즉 자신의 마음을 극복할 수 없다는 한계 인식에 기초한다”며 “시인은 이 시집을 통해 자신을 오롯이 비워보려는 것이 아닐까. 시라고 하는 하나의 불길에 마음의 밑바닥까지 장작처럼 내던져 비로소 예술적인 ‘춤’을 이루려 하는 것은 아닐까. 이 시집의 자전적 고백은 끝내 자기 존재를 불살라 하나의 예술적 자유에 이르기를 꿈꾸는 것, 죽음에 가까운 자기 증여의 형식”이라고 말한다.
정 시인은 “목숨 수 글자를 들여다보니/ 빼곡하게 흐르는 물 수가 보였다// 지나온 날들을 들여다보니/ 그 속을 흐르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렇게 내 목숨을 적셔주고/ 시가 된 사람들이/ 그립다”라고 시인의 말에 적고 있다.
정선희 시인은 2013년 강원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 『푸른 빛이 걸어왔다』, 『아직 자라지 않은 아이가 많았다』, 『엄마 난 잘 울어 그래서 잘 웃어』가 있다.
20회 모던포엠문학상을 수상했다.
도복희 기자 phusys2008@dy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