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영 청주시 청원구 건축과 주무관

정민영 청주시 청원구 건축과 주무관

[동양일보]전남 순천시 영동에 가면 팔마비라 불리는 소박한 비석이 있다. 고려 충렬왕 때 이곳 승평부사(昇平府使) 최석(崔碩)이 선정을 베풀다가 내직(內職)으로 전임하게 되자 당시의 관례대로 순천 부민들이 말 8마리를 헌납했는데 최석은 이 같은 관례를 폐습이라 생각하고 서울(개성)에 도착해 도중에 낳은 새끼말 1마리까지 합해 9마리를 되돌려 보냈다고 한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그때까지 내려오던 헌마(獻馬) 폐습이 없어지게 되자 부민들이 그 덕을 칭송하고 그의 청렴한 뜻을 기리고자 1308년(충렬왕 34)에 비석을 세우고 팔마비라 이름 붙였다. 팔마비는 한국 역사상 지방관의 선정과 청덕을 기리는 비석의 효시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백성들에 대한 수조권을 지방관이 가지고 있던 고려의 상황에서 청렴하기란 채식주의자 고양이를 기대하는 것과도 같았을 것이다. 소작농이 대부분이었던 시대에 수확량의 절반 이상을 임대료로 납부해야 했고 왕실 사용에 필요한 물품들을 현물로 바쳐야 했으며, 수시로 국가의 토목공사나 전쟁에 동원되어야 했다.

이런 부담은 온전히 농민들의 몫이었으며 무게와 고달픔은 조선시대가 끝나가도록 개선되지 않았었다. 고약한 관리를 만나 더 수탈당하지 않으면 그나마 천만다행이었다.

팔마비는 일개 지방관의 훈훈한 일화를 기념하기 위한 단순한 비석이 아니다. 선조들은 이 비석에 새겨진 여덟 마리의 말 한 마리 한 마리에 공직자가 지켜야 할 도리와 책임을 담아 후세에 전해주고자 했다. 말 여덟 마리를 돌려주는 것도 모자라 새로 태어난 망아지까지 보태서 돌려주고야 마는 그 결백한 마음이 바로 팔마비가 후세에게 전해주고자 했던 그 핵심 청렴이라는 덕목이었을 것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참으로 다양한 유혹과 도전에 직면해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물질적인 풍요가 넘치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부정과 부패가 같은 무게로 만연해 있다. 수단보다는 목적을, 과정보다는 결과로 도덕과 정의를 재단해 버리는 사회에서는 그 누구도 마음에서 우러난 순수의 청렴을 지니기가 힘들 것이다. 남들보다 더 가지기 위한 탐욕과 욕망을 오히려 부지런하고 도전적이라 칭송하며 정의와 공정을 호도하는 지경까지 이르고 있다.

청렴은 단순히 부패를 피하는 것이 아니다. 청렴의 근간인 공정, 책임, 약속, 절제, 정직, 배려가 고른 영양소가 되어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온전한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청렴은 개인의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특히, 공직자에게는 마치 늘 지니고 있어야 할 사회의 면역세포같은 것이다. 어떤 부패와 부정도 단단한 면역체계로 무장한 사회에서는 건강함이 무너지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더욱더 생기있고 활기차게 성장하게 될 것이다.

진정한 공정과 정의가 헷갈리는 지금의 이 시대야말로 우리는 팔마비가 전하는 가르침을 새삼 되새겨봐야 할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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