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전쟁’이 진행 중인 가운데 최근 중국이 자국 반도에 업체에 근무하던 한국인 기술자를 간첩 혐의로 구속했다.

해외로 자국의 기술력을 유출했다는 혐의지만 석연찮은 부분이 많다.

한국인 기술자가 가지고 있는 반도체 기술은 이미 한국에선 2000년대 초반에 이미 개발된 기술이기 때문이다.

최근 수년간 국가 핵심기술이 중국 등지로 빠져나간 사례가 적발되고 개별 범행의 심각성도 커지면서 경각심을 위한 단속이었단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모습을 보면 대한민국도 기술 유출 대응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세계적으로는 과학·기술 발전과 맞물려 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한 데다 과거 정치·군사 위주의 전통적 안보 개념이 냉전 시기를 지나면서 변화해 '경제 안보'의 중요성이 커졌다.

지리적 위치에 따라 국제무대 힘의 균형이 이뤄진 지정학(地政學) 시기를 넘어 이제는 국제관계에서 경제 패권을 위해 기술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기정학(技政學) 시대로 접어들었다.

기술 유출은 단순한 국부 유출을 넘어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경제안보의 핵심 과제다.

한국 역시 기술 유출 방지에 힘을 쏟고 있지만, 중요 기술의 해외 유출은 증가세다.

각국은 중요 기술과 인재 유출을 막기 있다. '경제 간첩죄'를 신설하고 컨트롤타워를 설치하는 등 사활을 걸고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한국은 영업비밀 보호에 머물렀던 기존 부정경쟁방지법의 한계에 맞닥뜨렸다.

기술 유출이 심각해 지면서 늦게나마 산업기술 유출방지 보호법, 방위산업기술 보호법, 대외무역법 등의 제·개정을 통해 기술 보호를 강화하고 국가 차원의 핵심기술을 지정하는 등 총력 대응을 하고 있지만 이미 주력 기술을 유출된지 오래다.

문제는 사법적 측면에서 보면 주요 산업의 기술 유출은 범죄 구성요건이 모호하고 위법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아 단속이 어렵다.

특히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데다 유출 수단이나 방법도 고도화돼 증거를 확보하고 혐의를 증명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이다.

이에 검찰과 국가정보원은 기술 유출 범죄에 자체 대응 역량을 강화했고 법원도 양형기준을 손보는 등 정부 기관이 일제히 국가 경제를 위협하는 '산업 스파이'를 잡기 위해 칼을 빼 들었다.

국정원에 따르면 올해 1∼9월 적발된 산업기술의 해외 유출은 19건, 이 가운데 국가핵심기술 유출은 5건이다.

2019년부터 올해 9월까지 적발된 산업 기술의 해외 유출 사건은 115건으로 집계됐고 이 중 국가핵심기술이 37건으로 32.2%를 차지한다.

국가핵심기술은 반도체·자동차·이차전지 등 우리나라의 주력산업과 관련해 기술적·경제적 가치가 높아 해외로 유출되면 국가 안보와 국민경제에 악영향을 주는 기술이다.

유출된 기술 중에는 반도체가 44건으로 가장 많고 그다음으로 디스플레이 23건, 이차전지 7건, 자동차 10건, 조선 7건, 기계 7건 등의 순이다.

범행 수법도 아예 회사를 차리고 핵심 인력을 빼내거나 국내 기업을 사들여 기술을 탈취하는 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지난 9월 서울중앙지검은 국가핵심기술인 삼성전자의 D램 공정 기술을 부정 사용해 20나노 D램을 개발한 혐의로 중국 반도체 회사 '청두가오전' 대표와 개발실장을 구속기소했다.

청두가오전 대표는 삼성전자 상무와 하이닉스반도체(현 SK하이닉스) 부사장을 지내며 국내 반도체 업계에서 30년을 근무한 인물이다.

작년 6월에는 삼성전자 임원 출신이 회사의 반도체 공장 설계 도면을 입수해 중국에 '복제 공장'을 세우려 한 사건이 적발돼 충격을 줬다.

정부는 소 읽고 외양간 고치기 전에 다른 국가와 같은 산업 분야의 법적 기준을 강화하고 유출을 막기 위한 제도적 시스템 도입이 필요한 시점이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