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형은 중원미술가협회장
진시황의 아들인 호해(胡亥)가 즉위했을 때 반전의 기회가 있었다.
갓 취임한 리더는 이전에 정치를 반성하며 약간의 선심으로도 민중에 큰 지지를 얻을 수 있는 법이다.
그렇게 되면 폭군의 아들일지라도 성군으로 재평가되는 기회를 낚아챌 수 있다.
하지만 호해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평범한 조직 리더만큼의 능력과 아량도 갖추지 못한 채 아버지 시절 득세하던 환관 조고(趙高)를 제상으로 쓰며 폭정을 계속했다.
그는 임금이 말을 사슴이라고 착각하게 할 정도로 무서운 신하였다.
법을 잘게 쪼개고 반대파 대부분을 위기에 빠뜨려 죽였다.
진시황이 추진하던 아방궁을 짓고 민중에게 과한 세금을 물리기도 했다.
그 결과 전국에서 민중 반란이 일어나고, 망한 나라들의 후예들이 새로운 정부를 세워 항거하기 시작했다.
진나라는 과도한 법질서로 흉하고 또 망했다.
법과 원칙은 과거를 다루지만, 사물의 이치나 일의 도리를 일컫는 사리(事理)는 미래를 다룬다.
<한서(漢書)> 48권 <가의전(賈誼傳)>에는 가의가 자신이 모시던 황제인 한나라 문제(文帝)에게 전한 말이 실려 있다.
“사리는 일이 벌어지기 전에 미리 금하는 것이고, 법은 이미 그렇게 벌어진 뒤에 처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법의 쓰임새를 가늠하기는 쉽지만, 사리의 쓰임새를 판단하기란 매우 어렵다.
물처럼 흐르며 공의와 질서가 적용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법이지만, 분노를 자아내게 하는 것도 법이다.
한국 현대사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법 규정을 잘게 썰고 각박하게 적용해 원래는 죄가 없던 사람을 위험해 빠뜨리는 ‘법쟁이’가 그렇다.
그들은 끊임없이 누군가가 과거에 저지른 일을 되돌아보려고 하고, 사소한 잘못이라도 들춰내 재단할 거리가 생기면 가혹할 만큼 공격했다.
이런 일들이 앞으로 또 반복되지 않을지 예의 주시할 일이다.
과도한 원칙과 규정보다는 지나간 일들을 돌아보고 교훈 삼는 사리가 더욱 합리적일 때가 많다.
가의는 사리의 속성은 이렇게 말한다.
“사리는 싹트기 전에 악을 잘라내고, 악이 조금 있더라도 형세가 미약한 상태에서 사람을 교화시키는 일을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다소 비민주적인 표현이지만 이렇게도 표현한다.
“사리는 백성이 스스로 깨닫지 못하더라도 날마다 선해지고 죄를 멀리하도록 합니다.”
가의의 이론에 따르면 나라와 조직은 그릇과 같다.
그릇은 좋은 곳에 두면 훌륭한 역할을 하지만, 망하는 곳에 두면 화근이 된다.
덕과 사리를 조직 운영의 핵심 가치로 두게 되면 당장 힘과 효율성뿐만 아니라 잠재성까지도 키울 수 있다는 것이 가의 주장이다.
먼 훗날 사람들도 그 리더를 기리고 본받으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순(堯舜)과 같은 성군들이 수백 년에 걸쳐 나라를 유지한 것도 같은 이유다.
독재자들의 정치가 처음에는 대중적 인기를 끌다가도, 나중에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받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히틀러가 대표적인 사례다.
가의는 자문관이자 저술가로 거침없는 견해를 발표하다가 정치적 모함에 휘말려 지방 제후의 스승 역할로 밀려났다.
아마도 젊은 나이에 조직 운영의 원리와 전략에 통달하다는 사실 때문에 많은 이들로부터 견제를 받았을 것이다.
가의는 예수와 똑같은 33살 나이에 안타깝게 세상을 떴다.
“원칙의 뒤편을 경계하라.”
우리 사회에는 유독 법조인 출신 오피니언 리더가 많다.
시험으로 공정하게 얻은 자격을 바탕으로 젊은 나이에 관직을 갖거나 진입장벽이 높은 기업에서 성공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경로이기 때문이다.
또 그렇게 꽃길을 밟은 사람들이 하는 말과 글을 유독 설득력 있고 값있게 받아들이는 사회 풍토를 무시하기도 힘들다.
그런데 이들이 각개에 개입하면서 얼마나 공동체를 성숙시켰는지는 조금 비판적 평가가 필요할 듯하다.
과도한 법 만능주의로 각박하게 규정을 적용하며 남을 못살게 군 것은 아닌지, 가까운 문자 주의(文字主義)로 힘 있는 사람을 대변하기만 한 것은 아닌지 말이다.
규정 전문가들은 합법에 밝은 만큼 편법에 대해서도 밝다.
원칙을 강조하는 만큼 뒤에서 부리는 농간이나 변칙도 많다.
나치 독일의 부역자들과 한나라 무제 시대에 형리(刑吏)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가의는 그런 사람들이 상층부를 차지한 조직은 붕괴하고 분열한다고 경고했다.
이제부터라도 법과 사리를 균형감 있게 운영하는 리더들이 우리 사회에 더 많아졌으면 한다.
필자가 거주하는 충주지역은 충주문화관광재단이 문화 도시로 가기 위한 다양한 창작 콘텐츠 발굴에 힘을 쏟고 있다.
그러나 시민들이 눈높이가 얼마만큼인지 세심하게 살펴 시민 삶 속에서 함께 공존할 수 있도록 ‘쓴소리’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꿰뚫어야 한다.
이제라도 쓴소리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아야 한다.
문화관광예술을 통하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