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픔을 추슬러 다른 이를 위로하는 봉사자로 살다
“잠시 지나갈 혼란으로 영원한 비극을 택하지 말라”
“떠난 이 소중하되, 유가족도 슬픔에서 벗어날 권리 있다”

[동양일보 박현진 기자]아들 둘을 키우며 욕심 많은 여느 엄마처럼 조금은 ‘극성’도 떨어보고 또 조금은 ‘압박’도 줘가며 ‘엄마’로서의 자부심을 잃지 않고 살아왔다.

‘이젠 다 잘 컸구나’ 싶었을 때쯤, 2004년 제대 복학한 작은아들이 해양스포츠행사 도우미로 나섰다가, 유난히 풍랑이 심했던 그 바닷가에서 5명의 아이들을 구하고 자신은 체력소진으로 끝내 물속에서 나오지 못했다.

그리고 2021년, 동생을 잃은 트라우마에 사업 투자 실패로 고통스러워하던 큰아들은 부모님을 비롯한 주변인들에게 돌아갈 피해를 ‘깨끗이’ 정리하고 스스로 ‘먼 길’을 떠났다.

그렇게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유가족’이 된 사람, 그러나 꿋꿋이 일어서 자살자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자살예방 강의를 펼치고 다니는 사람, 8년 전 남편의 고향으로 따라 내려와 이제는 청주(상당구 00면) 사람이 된 ‘봉사자’가 있다.

아침 기온이 제법 쌀쌀하던 지난 6일, ‘문학 테라피스트’로 구석구석의 멍듦을 찾아다니는 권희돈 청주대 명예교수 주관 ‘말하는 자서전’ 아홉 번째 자리를 찾았다. 서문대교 앞 허름한 건물 2층, 20여 석 규모의 카페 150에는 10여명의 참가자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들 앞에 선 ‘봉사자’는 작고 여린 체구에 곱고 선한 인상과는 달리 수줍음 없이 당당하게, 때론 힘이 넘치는 목소리로 준비한 ppt를 설명해 나갔다.

“보건복지부 발표 2023년 자살사망자 수는 1만3978명으로, 지난해보다 1072명 증가했고, 이중 50~60대 중장년층과 10대 자살률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불명예스럽게도 OECD국가 중 한국이 자살률 1위를 기록한 저변에는 자살을 하나의 선택지로 인식하는 경향이 높아진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인식이 팽배하게 된 원인 중 1위는 ‘불통’으로, ‘누군가가 나를 쳐다봐 줬으면’, ‘내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에서 급기야는 ‘나만 없어지면 되는데’라는 한계상황에 몰려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봉사자’는 잠시, 큰 호흡을 몰아쉬고는 “나도 그랬다”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주의를 집중시켰다.

어쩔 수 없는 사고였다며, 그래도 다른 생명을 구해주고 간 장한 희생이라면서도 작은아들을 잃은 슬픔에 큰아들의 표정을 살피지 못했다고 했다. 무슨 말이라도 털어놓고 의지하고 싶었을 큰아들의 말을 듣지 못했기에 위로조차 건넬 수가 없었다고 했다.

결국 자신의 무관심에 상처를 안고 떠났을 아들에 대한 미안함으로 더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끝없는 나락의 구덩이에 떨어질 찰나, 두 아들이 원하는 엄마의 모습은 이게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통스러울 때마다 걸었다. 무조건 걸었다. 고통을 없애달라고 기도한 게 아니라 고통을 견디고 이겨내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리고 할 일을 찾았다.

나처럼 힘든 사람을 만나 그들을 위로하고, 내가 미처 못 알아봤던 또 다른 누군가를 찾아 이야기를 들어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망설임 없이 2년 전부터 자살예방 봉사자로 나섰다. 그가 만났던 수많은 아픈 사람 중에 “나 같은 모지리도 살아요. 힘내세요”라는 한마디가 얼마나 가슴 절절 소리없는 눈물로 많은 이를 위로했을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유가족이 아닌데도 (주변에) 방해가 되지 않으려 입술을 꾹 깨물어 가며 눈물을 흘리던 그날 참관자들의 모습은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 그만큼 유경험자로서의 봉사자의 선도는 울림이 깊었다.

이제 그는 말한다.

“떠난 이가 남긴 삶과 추억을 소중하게 간직하며 살되, 우리도 더 이상 좌절만 하지 말고 ‘남은 자’로 함께 살아가자. 유가족에게도 권리가 있다”고.

마지막으로 그는 ‘자살 유가족 권리장전’을 읽는 것으로 강의를 마무리했다.

‘나는 죄책감에서 벗어날 권리가 있다.(...중략). 다른 사람들이 내 슬픔을 덜어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나를 속이는 일을 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나는 내 감정을 정확히 파악해, 수용하는 감정들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줄 상담(카운슬링)과 지원 그룹을 찾을 권리가 있다. 나는 새로운 시작을 할 권리가 있다. 나는 살 권리가 있다.’

‘봉사자’는 51년 충남 부여 출생으로, 내년 4월 한생명살리기운동본부의 교육과정을 수료한 후 정식 ‘강사’로 전국을 돌며 카운슬러로 나서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자칭 ‘두 아들을 잃은 모지리 봉사자’, 일흔네 살의 김순희씨다. 박현진 문화전문기자 artcb@d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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