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해외 여행중 투어를 마치고 숙소에 들른 저녁 때 가이드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밤에 함부로 나가시면 절대 안됩니다”이다. 전세계 어느나라에 가도 가이드가 하는 이 말을 듣지 않는 지역은 거의 없다.

불상사가 생길 경우 가이드가 책임지기 싫어서도 그렇긴 하지만 어쨌거나 다른 나라의 밤길 치안이 썩 좋지 않다는 건 다 아는 일이다.

반면에 외국인들이 대한민국에 와서 가장 많이 놀라는 것 중 하나가 심야 도심이나 농촌 어느곳에서든 ‘밤거리’를 아무 위험 못느끼고 돌아다닌다는 점이다.

위험 불감증이 아니라 우리는 외국인들이 그렇게 놀랄만큼 범죄 등의 위협이 적은 청정 안심국가라는 자부심이 컸다.

그런데 이번에 만 13세 이상 국민 넷 중 하나는 대한민국 사회가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이 12일 발표한 '2024년 사회조사 결과'가 그렇다. 조사 결과에는 사회 불안 요인으로는 범죄와 경제적 위험을 꼽은 비중이 2년 전보다 큰 폭으로 상승했다고 나와 있다.

사회가 안전하다고 답한 비중은 2014년 9.5%를 기록한 뒤로 2년 주기로 이뤄진 조사에서 매번 상승했지만 올해 처음 하락세로 전환했다.

밤에 혼자 걸을 때 불안하다고 느낀 비중은 30.5%로 2년 전(29.6%)보다 0.9%p 상승했다. 밤길에 불안을 느낀다고 답한 비중은 2014년 42.6%를 기록한 뒤로 꾸준히 하락했지만 올해 상승세로 돌아섰다.

성별로 보면 여성의 44.9%가 남성의 15.8%보다 월등히 높다.

별로 유쾌하지 않는 조사 결과다. 결국 이제 대한민국은 어느 나라보다 안전하다는 자부심과 통념은 사라진 셈이다.

전국 각지 어디를 막론하고 불쑥불쑥 터지는 묻지마 살인 사건, 길거리에서의 이유없는 폭행과 칼부림, 생면부지의 사람이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팎에서 가하는 폭력행위 등이 그 증거다.

그래서인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내놓은 ’치안 복지 경제성장’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살인 강도 절도 같은 전통적 범죄 발생 건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보다 크게 높다. 살인 강도 강간 방화 같은 흉악범죄가 더 무섭게 날뛰고 있는 것이다.

범죄를 막거나 범인을 잡는데 소요되는 사회적 비용이 증가하는 것도 달갑지 않은 일일뿐더러 국민들이 하루하루 불안한 가운데 살아야 한다는 점 자체가 스트레스 받는 일이다.

어디서 낯모르는 사람이 다가와 벽돌로 내 머리를 가격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길거리를 걷는다면 그게 온전한 사회인가.

흉악범 개개인의 마음 속에 있는 범죄 욕구를 잠재우기는 불가능하므로 결국 안전사회는 정부가 시스템으로 막거나 줄일 수밖에 없다.

2022년 서울시에서는 ‘안심마을보안관’이라는 방식을 도입해 2인 1조로 구성된 보안관이 평일 오후 9시~다음날 새벽 2시 30분 심야시간에 동네 골목 곳곳을 순찰하는 지킴이 활동을 하고 있다.

주로 전직 경찰, 군 간부 출신, 태권도·유도 등 유단자 등 우수 인력을 활용한다고 하는데 효과가 꽤 높다고 한다.

이런 대책 등 다양한 방식의 ‘안전한 밤거리’ 조성에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가 적극 고려해봄 직하다.

특히 CCTV의 확대와 시가지 전역의 촘촘한 감시망이 연계돼 범죄나 사고·재난 등으로부터 국민의 생명을 지켜줄 종합 안심귀가 보호망이 제대로 갖춰져야 한다.

국민들은 밤거리를 콧노래 부르며 주변 신경쓰지 않고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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