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현 충북도 도민소통과 주무관

김소현 충북도 도민소통과 주무관

[동양일보]“아, 이런 말 하면 성희롱인가?” 언제부턴가 우리는 예쁘다거나, 날씬하다거나 상대의 외모를 칭찬하는 대화에 이런 말을 덧붙이곤 한다. ‘예쁘다’의 사전적 의미는 ‘생긴 모양이 아름다워 눈으로 보기에 좋다거나, 행동이나 동작이 보기에 사랑스럽고 귀엽다’이다.

한때는 이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미소를 안겨주고, 하루를 밝게 만들어줄 수 있는 칭찬의 말이었지만 오늘날 "예쁘다"라는 말은 더 이상 순수한 칭찬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가 많다. 특정 맥락에서는 이 말이 성희롱으로 간주되며, 때로는 관계를 어색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왜 이런 시대가 되었을까? 양성평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고, 개인의 존중과 배려가 중요시되는 방향으로 변화한 결과로, 이는 올바른 변화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단순한 칭찬마저도 불편하게 느껴지는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상호 간의 소통과 이해가 부족해지고 있음 또한 생각해보아야 한다.

대표적으로 "예쁘다"라는 말은 말하는 사람의 의도와 듣는 사람의 맥락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말하는 이는 순수한 감정으로 칭찬했을지라도, 듣는 이는 이를 외모에만 초점을 맞춘 평가나, 의도치 않은 성적 뉘앙스로 받아들일 수 있다. 특히 직장이나 공공장소처럼 공식적인 환경에서는 이런 해석의 차이가 더 민감하게 작용한다.

이처럼 칭찬이 성희롱으로 느껴지는 현상의 이면에는 과거부터 쌓여온 외모 중심의 평가 문화와 성별 간의 권력 불균형이 자리잡고 있다. 과거의 잘못된 관행이 반복되면서, 사람들은 외모와 성별에 대한 발언 자체를 경계하게 됐고, 결과적으로 무해했던 칭찬마저 의심받게 된 것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던데, 우리는 이토록 칭찬을 망설여야 하는 걸까?

하루 중 가장 긴 시간을 할애하는 직장에서, 조직의 요구를 충족시키며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관계의 균형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좀 더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소통하며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노력을 해야한다. 이때 칭찬은 소통의 문을 열어주는 열쇠이자, 관계를 이어주는 윤활유 같은 존재다.

그렇기에 우리는 칭찬을 피하거나 배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보다는, 칭찬의 본래 가치를 되찾는 노력을 해야한다. 칭찬을 단순히 외모에만 국한하지 않고 상대방의 노력, 성과, 성격, 또는 인간적인 매력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예를 들어 "오늘 발표 정말 잘했어요."나 "당신의 배려가 정말 따뜻하게 느껴져요." 같은 말은 성별이나 외모와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예쁘다"라는 말도 성희롱으로 오해받지 않기 위해 단순히 말하기를 ‘참는’ 연습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의도를 이해하고 상대방이 느끼는 감정을 존중하며, 열린 대화를 통해 상대방이 오해하지 않도록 본래의 가치를 ‘표현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우리는 개인에 대한 ‘존중’이 가치가 올라갈수록, ‘매너와 예의’라는 울타리를 통해 사람간의 ‘거리’가 유지되는 안전하고도 냉정한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울타리가 견고해질수록 양성평등의 가치 또한 수호되겠지만, 소통과 배려, 존중으로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는 안전하고 따뜻한 사회안에서 진정한 양성평등이 실현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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