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아름 충북도 방사광가속기추진과 주무관

장아름 충북도 방사광가속기추진과 주무관

[동양일보]얼마 전 조카와 함께 장난감 가게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갖고 싶은 장난감 매대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던 조카는 파란색 스포츠카를 집으면서 “나는 남자니까 파란색 스포츠카를 살게”라고 말했다. 이 네살짜리 꼬마가 이런 생각을 할 줄이야! '남자니까'라는 걸 따지지 말고 네가 갖고 싶은 걸 사라고 말했더니 쭈뼛거리면서 빨간색 자동차를 골랐다.

어렸을 때 친구들과 흙장난을 하고 공차기를 좋아했던 나도 생각해보니 부모님께서 일부러 분홍색 티셔츠나 치마를 억지로 입혔다. 성인이 되고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리고 뭔가 알만한 것을 알게 되고 나서부터 나 역시도 ‘이제 나이도 어느 정도 찼으니 구두를 신고 원피스를 입고 다녀야 하나’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고정관념이 사라지고 성별에 따른 취향을 구별하는 것이 촌스러워진 사회가 왔다고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여자는 이래야 하고 남자는 저래야 한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자란 우리는 아직도 성을 기준으로 취향을 타의적으로 선택하고 무언가를 구분하는데 익숙하다.

남성스럽게 또는 여성스럽게 자라난 사람들은 우리 한국 사회에서 마치 매뉴얼처럼 자리잡은 ‘남성’과‘여성’처럼 행동하기를 원한다. 예를 들어 “남자가 왜 이렇게 말이 많아”, “여자치고는 잘하네”라는 고정관념 섞인 말을 하거나, 힘쓰는 일은 남자에게만 강요하고 커피 타기, 탕비실 정리 등의 일은 여성에게 전담하게 하는 경우 등이 있다. 시대의 변화는 계속해서 이어져오고 있지만 고정관념을 깨고 불평등을 해소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도 작게나마 변화의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직장에서 여성의 승진 기회 확대와 유리 천장 해소를 위한 제도적인 변화가 추진되고 있고, 성차별적인 언어를 개선하기 위해 지속 노력하고 있다.

성인지 감수성이란 성별 간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차별과 불균형을 성의 불평등으로 인지하는 능력을 말하는데, 이는 1995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4차 유엔 여성대회에서 사용되어 국제적으로 통용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8년 성희롱으로 해임된 대학교수가 제기한 행정소송의 대법원 판결문에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단어가 최초로 등장하면서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됐다.

성인지 감수성은 단순히 이론적인 개념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실생활에서 말이나 행동으로 나타날 때 의미를 가지며 그것이 사회에 스며들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불평등을 인식하고 이를 해소하려는 사회,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성인지 감수성을 키우고 사회에 널리 퍼질 수 있도록 사회 각계각층 다방면에서 노력하고 개선하도록 해야 한다. 개인 스스로가 성별 차이와 다름을 인지하고 국가 및 지자체가 법과 제도를 활용해 그 변화의 속도를 조금 더 빠르게 그리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지 않을까. 지금보다 좀 더 공정하고 차별 없는 세상에서 자신의 능력과 역량을 마음껏 펼치며 성장할 우리 후손들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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