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준 작곡가
[동양일보]은사님의 추모 음악회라 여러 날 전부터 신경이 쓰인다. 그 넓은 청주예술의전당 홀이 휑- 하면 어쩌지… 겨울 초입인데 날씨는 괜찮으려나… 하루에도 몇 번씩 핸드폰 날씨 알림을 열어 본다.
아침나절에 눈발이 풀풀 날린다. 아이고 야단났다. 충북 사람들이, 아니 청주 사람들이 이런 날씨에 음악 감상하겠다고 집 나서려나…? 아무래도 내리는 눈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조금 일찍 길을 나섰다. 그쳤다 날렸다 하던 눈발이 음성 백마령을 넘을 때는 폭설이 되어버렸다. 걱정이 되지만 한 편으로는 올 들어 첫눈이라 괜스레 마음이 들뜨기도 한다. 청주예술의 전당 주차장에 차들이 그득하다. 로비에 들어서니 와글와글, 다행이다.
추모 묵념에 이어 추모 영상이 화면에 장면, 장면들이 뜬다. 세월의 바통을 이어받으며 스쳐간다. 나지막이 깔리는 청주시립교향악단과 첼로 박혜나의 배경 음악이 추억의 저쪽으로 시선을 이끈다. 추모이면서도 우울하지 않고, 그렇다고 경박스러운 건 더더욱 아닌 격조 높은 멘트 와 어조로 일관한 유영선 주필의 진행이 돋보였다.
아- 드디어 테너 채완병 교수님의 무대다. 그런데 또 걱정이다. 85세의 연세에 목소리가 괜찮으실까… 역시 나만의 걱정이었다. 마음을 파고드는 흔들림은 없었어도 가슴 찡함이 여운을 남긴다. 그런데 또 다른, 걱정이 아니라 아쉬움이 남는다. 감상하러 오신 청주시민들의 박수 소리가 너무 젊잖다. ‘Panis Angelicus(생명의 양식)’을 무사히(?) 마치시고 무대에서 내려오신다. 이 때라도 관객들은 노구를 이끌고 은사님 추모 음악회 무대에 섰다는 그것만으로도 기립박수를 쳐야 마땅하지 않았을까? 감동을 안으로만 삭이는 소극적인 반응이 죄송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우리의 감상 매너를 좀 더 성숙시켜야 하는 것이 아닌가. 최나경의 플루트 연주는 역시 세계적인 연주자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가 첼로 박혜나와 같이 이상덕 선생의 외손녀임을 알고 나니 선생께서는 대를 이어 오늘도 우리에게 수준 높은 음악을 들려주고 계시는구나 싶었다.
이제 선생께서 씨앗을 뿌리시고 15년 동안 무보수로 후진을 기르셨던 청주시립교향악단의 연주 차례다. 베토벤의 ‘운명’만큼이나 학창 시절에 많이 감상했던 드보르작의 ‘신세계교향곡’이다. 김경희 상임지휘자의 몸짓은 코끝을 시큰하게 만들었다. 유치환의 ‘깃발’처럼 ‘소리없는 아우성’이었다. 감동이었다. 아- 그런데 또 아쉬움이 남는다. 토닥토닥 박수가 우뢰가 되어야 한다는 건 그렇다 치고, 저쪽에 앉아 있는 어느 젊은 엄마와 아이의 부스럭 낑낑 소리가 몰입을 방해한다. 손가락을 입에 대고 쉿! 겨우 잡소리를 잡았지만 끊어진 ‘신세계’의 세계는 영 되돌아오지 못했다. 민망해하던 젊은 엄마의 표정에서 수준 높은 감상의 자세 가능성을 본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추모 음악회를 주최한 동양일보사와 청주시 관계자분들에게 음악인의 한 사람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이제 우리들의 감상 태도만 조금 업그레이드하면 되겠다. 박수 칠 땐 손바닥으 로만 치지 말고 마음을 담아 온몸으로 치자고 외치고 싶었다.
충주로 돌아오는 밤길, 전조등이 목화송이 같은 함박눈을 화르르 끌어안는다. 뜻깊은 음악회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