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호 한국외대 명예교수
[동양일보]인류는 지금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불확실성의 늪에서 허둥대고 있다. 이미 극에 달해 있던 선진국과 후진국 간의 남북문제는 코로나 사태를 지나면서 격차가 더욱 심해졌고, 구소련이 해체되면서 사라지는가 했던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 간의 동서문제는 러시아와 중국의 부상으로 과거보다 더욱 첨예한 대립 양상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더해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되면서 정치, 경제, 외교 측면에서 벌어질 혼란은 그 방향을 가늠하기 어렵게 되었다. 8년 전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미국 우선주의와 극우 포퓰리즘으로 대변되는 트럼피즘(Trumpism)으로 인해 2차 세계대전 이후 쌓아온 국제사회의 규범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렸다. 그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트럼피즘을 흉내낸 포퓰리즘이 판을 치게 되었고 정치에서의 도덕성은 아예 거추장스런 사치품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은 더욱 어려운 지경으로 변해가고 있다. 북핵 문제에 대해 그동안 강경노선과 유화정책이 번갈아 펼쳐졌음에도 대한민국은 북핵을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하는 기구한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한, 북한이 천둥에 개처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뛰어들어 북한군이 우크라이나군과 전투를 벌이는 슬픈 장면마저 연출되고 있다.
세계 최대의 시장 중국은 이제 세계 각국의 수출대상국이 아니라 중국 제품이 없으면 지구촌의 일상이 멈출 정도로 막강한 수입대상국이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중국의 수출품은 조악한 조립품 단계를 뛰어넘은 지 이미 오래고, 세계 시장에서 가격이 아닌 품질로 경쟁하고 있으며, 중국의 기술력은 이미 선진국 반열에 올라서 있다.
어디를 둘러봐도 파란 불은 보이지 않고 동서남북 사방팔방 모두 빨간불뿐이다. 경제도 빨간 불이고 안보도 빨간 불이다. 사회 양극화가 극에 달하고 있으며 그 표출 양상은 극렬해지고 있다. 그 잘 나가던 대한민국이 흔들리고 있다. 달리려 하나 발이 떨어지지 않는 꿈속처럼 마냥 답답한 상황이다.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의 선진국은 아니지 않은가? 지금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 앞으로 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하나하나 점검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내야 한다. 지금이 있기까지 지난 반세기 동안 정말 열심히 그리고 힘들게 달려왔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지난날의 방식과는 확연히 다른 획기적이고 혁신적인 성장동력을 찾아야만 한다. 조금은 더딜지라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고르게 발전하는 균형 발전, 조금은 답답하더라도 많은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민주적 발전, 조금은 손해를 보는 것 같더라도 더불어 같이 가는 동행 발전, 그 이외에도 우리가 해보지 못한 그러나 꼭 해야 하는 수많은 모습의 발전이 있을 것이다. 앞으로의 발전은 그렇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면서도 당장 해결하거나 대처해야 할 것들은 또 그렇게 헤쳐나가야 한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요구할 것이다. 트럼프 당선자의 한국에 대한 시각은 아마도 ‘형에게 기대어 많은 것을 이룬 부자 동생’ 정도인 듯하다. 또한, 우리가 더는 후진국이 아니듯 중국 역시 이제는 우리 뒤를 따라오는 후진국이 아님을 직시해야 한다. 중국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할 산업은 과감하게 구조조정해야 하며,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다시 뛰기 위해 할 일이 태산이다. 국민은 정치권이 정신을 차리기를 오랫동안 기다려 왔다. 여야 모두 국민이 상대당을 심판하리라 떠들어댄다. 그야말로 삶은 소대가리가 웃을 일이다. 국민은 이 나라의 정치권 전체를 심판하고자 하며, 여야는 대통령과 함께 그 심판의 대상일 뿐이다. 정치가 어지러울 때는 국민이 중심을 잡아주어야 한다. 정치권이 왜곡시킨 민주주의를 국민이 바로 잡아야 한다. 경제 발전을 견인해온 기업의 공을 외면하지는 않지만 이제 기업도 바뀌어야 한다. 대기업의 지배구조도 민주적 경영체제로 바뀌어야 하고, 작지만 강한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어깨를 견주며 기술혁신으로 경쟁하는 기업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우리는 머리털이 곤두서는 절체절명의 시점에 서 있다. 모두 제정신으로 돌아와 힘을 합쳐 지혜를 모아야 한다. 그걸 못하면 다시 후진국의 신세를 면할 수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