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피 흘려 지켜온 대한민국 민주주의, 세계 10위권 국가라는 자부심으로 살았는데 이게 무슨 나라망신인가? 부끄러워 고개를 못 들겠다.”

윤석열 대통령의 뜬금없는 ‘6시간 천하’ 계엄령 선포를 본 국민들의 장탄식이다. 그야말로 지옥과 천당을 오간 한밤의 생쇼였다.

윤 대통령은 담화에서 ‘자유 헌정질서 수호’ ‘민주당의 입법 권력에 대한 대통령의 정당한 권리행사’를 계엄령 선포의 정당한 이유라고 강변했다.

그러나 매사에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이라는게 있는데 다른 이도 아닌 국정 최고책임자의 사리분별이 그렇게도 안되나. 그 정도로 계엄령을 선포한단 말인가.

석달 전에 김민석 민주당 의원이 윤 대통령의 계엄선포 움직임을 지적했을 때도 정부와 여당은 “상식적으로 말도 안된다. 요즘같은 대명천지에 될 소리를 하라”며 되레 미친사람 취급했다. 심지어 “계엄을 선포하면 정부가 무너질 것이다, 그런 자해행위를 할 정부가 어디에 있겠냐”고 반문했다.

그런데 상식 밖의 일이 터졌고, 그것도 다름 아닌 대통령이 저지른 현실이니 국민들은 멘붕이다.

더 기가막힌 건 전투병을 헬기로 태워 실어나른 후 '국회봉쇄' 조치에 들어간 점이다.

군인들이야 명령에 따라 국회를 막고 의원들 출입을 저지했겠지만 그 자체가 위법 부당한 일이라는 것을 모를리 없는 대통령, 각료, 비서관들, 계엄사령관 등의 사고체계가 궁금하다.

모르고 그랬을까, 알면서 아예 무력으로 진압하려 했던 것일까. 후자 쪽일까 싶어 소름이 돋는다.

전두환 노태우씨의 12.12 반란에 대한 재판 때도 법원은 그들이 구데타 직후 국회를 봉쇄했던 것은 '헌정 유지의 중단'이 되기 때문에 절대로 위법하다는 판례를 남긴바 있다.

군인들은 윤 대통령의 '사병(兵)이 아니다. 대한민국 군인들은 절대 국민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지 않는다. 군과 국민의 기본적인 신뢰다. 자유당이나 5.17 시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난데없는 비상계엄에 코스피는 지금 나락으로 떨어졌고 환율도 치솟으며 서민들의 경제는 더욱 도탄에 빠져들었다. 다시 원상태로 회복하는데 상당한 시간과 국력이 소모될 게 뻔하다. 부끄러움과 피해는 모두 힘 없고 가난한 국민들 몫으로 남아있다.

지금 법조 전문가들은 이번 계엄령 선포를 ‘내란’으로 판단하고 있다. 내각의 심의를 거쳐야 하는 절차도 무시한 점, 계엄의 조건 자체가 형성되지 않았다는 점 등 때문이다.

평화시대에, 법과 원칙이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런 계엄은 독재정권의 전형일 뿐이다. 과거 군사독재 정권이 권력 연장을 위해 민주주의와 인권을 유린하며 선택했던 야만적 수단이다.

탄핵으로 가든, 윤 대통령이 국민의 요구를 받아들여 특검을 수용하고 정국을 수습하든 국민들은 더 이상 이런 꼴을 보고싶지 않다.

이제 앞으로 남은 일은 정부, 정당, 법조 시스템의 ‘합리적 조치’이다. 국가 혼란을 최소화하고, 가장 빠른 시간 내에 사회와 경제를 제자리로 돌려 놓는데 여야가 초당적으로 나서야 한다.

수가재주 역가복주(水可載舟亦可覆舟)라는 말이 있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뜻으로, 민심(국민)이 정권을 만들 수도 있지만 몰락시킬 수도 있다는 말이다. 윤 대통령은 물(민심)의 흐름에 역행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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