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두고 구경거리 만드는 동물원은 안돼
동물이 잘사는 환경이어야 사람도 살아
[동양일보 박현진 기자]“내가 수의사가 된 이유는 동물을 내 아이처럼 사랑해서, 또는 아주 많이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저 동물도 귀하고 소중한 생명체이기에 사람과 똑같이 맞으면 아프고, 아프면 울고, 다치면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충북대 수의학과 재학 당시 실습생으로 와봤던 청주동물원에 졸업 후 2001년 정식 수의사로 취업, 지금까지 청주동물원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는 같은 이유로 전국의 관광형 동물원에서 어린아이와 가족 관람객의 환심을 사기 위한 ‘먹이주기 프로그램’, ‘거북이 만지기’, ‘뱀을 목에 걸어보기’ 등의 동물체험은 동물 학대라며 없어져야 할 프로그램이라고 지적한다.
일례로 ‘먹이주기’ 체험은 사람(관광객) 중심의 수익형 프로그램으로, 넓은 산야를 뛰어놀아야 할 야생동물들을 좁은 우리에 가둬놓고 '구경거리'로 만들어 시도 때도 없이 먹이를 받아먹게 만든다는 주장이다.
청주동물원에는 '그런' 게 없다. 관람객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동물에게 자유를 준다. 동물을 복지의 대상으로 보살피다 보니 주로 오후에 활동하는 수달을 못 본 오늘 오전의 관람객이 다음날 오후 수달을 보기 위해 또다시 동물원을 찾거나, 너무 작은 공간에 동물이 갇혀있는 게 불편했던 애호가들이 전국에서 청주를 찾는 등, 오히려 관람객이 늘고 있다.
이처럼 동물이 잘사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사람도 잘 살고 상생‧공존하는 세상이 될 수 있다는 사람, 그는 바로 24년차 청주동물원 지킴이 김정호(49) 수의사다.
바람이 유난히 강하고 차가웠던 지난 10일, 관람객이 없어 조금은 썰렁한 청주동물원 마당에서 김 수의사를 만났다. 그는 찬바람에 연신 점퍼를 여미면서도 소나무 가지 위 왜가리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저 녀석들이 매일 이 시간만 되면 먹이를 먹으러 우리 동물원을 찾아와요. 그야말로 야생동물이 동물원을 자신의 둥지인 양 자유롭게 드나드는 거죠. 이게 바로 공생입니다”
1997년 개관한 청주동물원에는 현재 66종 284마리의 야생동물이 함께 살고 있다. 토끼, 닭 등 가축 위주의 초창기와는 달리, 비썩 말라 ‘갈비사자’로 불리던 ‘바람이’가 보기 좋게 살이 올라 건강해지고, 아직 서로를 알아보진 못하지만 ‘구름이’ 딸과도 합사를 앞두고 있다. 김 수의사의 동물복지에 대한 생각의 변곡점이 된 웅담 채취용 반달가슴곰 세 마리도 좁은 철창을 벗어나 자유롭게 노닐고 있다.
야생동물을 야생동물답게 살아가게 하는 것이 목표인 만큼 지난해에는 돌보던 삵 2마리를 야생으로 돌려보내기도 했다.
“동물을 가둘 것이냐, 보호할 것이냐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동물복지에는 철학이 있어야 한다”는 김 수의사.
국내 최초로 천연기념물 치료소, 야생동물 보호시설을 비롯, 자체 병원에 CT까지 갖춘 청주동물원은 김 수의사를 비롯한 3명의 수의사와 직원들이 무엇이 불편한지 세심하게 살피며 동물들이 더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공간 마련을 위해 쉼없는 관찰과 연구를 이어나가고 있다.
“뱀의 심장소리를 들으며 가슴이 뭉클했다”는 그는 “관람객들이 사자, 여우 등의 내장을 검진 내시경으로 공개 관찰할 수 있게 함으로써 동물 생태에 대해 공감·교감할 수 있게 되고, 특히 어린아이들은 건강한 무해동물과의 접촉을 통해 자연친화적인 성정을 키워나갈 수 있다”고 확신한다.
청주동물원이 교육청과의 협약을 통한 교사 환경교육, 동물의 성장과정이나 생활환경 등의 영상을 통한 유튜브 등 SNS 정보 공유, 환경부 지정 1호 거점동물원으로서의 역할 등 단순한 구경거리가 아닌, 동물을 매체로 한 고퀄 콘텐츠 생성을 계획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74년 부여 출생인 김 수의사는 현재 기러기 아빠다.
열세 살 딸을 아내와 함께 미국 유학길에 보낸 것도 딸이 원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 귀국이든 계속 유학이든 뭔가를 선택하면 또 역시 그대로 해주겠다는 김 수의사.
얼핏 보기에도 자신을 꾸미는 일엔 전혀 관심이 없는 듯한 그의 수수함은 가족에게나 동물에게나 오롯이 소통으로 다가가 최선을 다하고자 함이다.
“어느 시인의 시구처럼 무해한 야생동물이야말로 자세히, 오래 보면 귀하고 사랑스러운 존재임을 알게 된다”며 “그걸 아는 순간 사람과 동물의 상생은 시작되는 것”이라는 그의 의지가 살아있는 한, 동물복지의 요람 청주동물원을 찾는 많은 이들이 진정한 동물들의 친구가 될 날도 멀지 않았다. 박현진 기자 artcb@dy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