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현 시인, 첫시집 "당신이란 페이지를 넘기는 중입니다" 출간
너는 이미 다녀갔는데
다녀가겠다는 엽서가 이제야 당도했다
파사석탑과 아유타국 공주가
합장하고 있는 380₩ 우표가 붙어 있었다
선납 일반통상 $50은 바람신의 노여움을
기어이 뚫겠다는 의지의 속도?
다녀간 후 다녀간다는 소식으로
너에게 닿고 싶어졌다
네가 앞질러버릴 너의 다음 엽서의
여정은 시작되었고
네가 다녀간 후 다녀가겠다는
엽서를 나는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알렉스프레거의 ‘Big West’는
너의 속도로 읽어야 했다
시 ⌜엽서의 속도⌟전문
박정현 시인의 첫시집 당신이란 페이지를 넘기는 중입니다가 도서출판 상상인에서 출간됐다. 곡진한 전언 같은 이번 시집은 낮고 깊은 눈길로 세계를 응시하고 자신의 기억을 끌어올려 서정적 미학의 건축물을 부려놓는다.
이 시집은 1부 소나기 후둑이고 지나가면 어쩌면, 2부 검은 실과 하얀 실의 구분이 모호해질 때, 3부 가지 못한 길은 들어서기 어려운 입구를 가지고 있다, 4부 밤의 가장 깊은 곳까지 다다르기도 하고로 구성됐다.
전형철(연성대 교수) 시인은 “박정현의 시는 심미적 감식안을 통해 비극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존재론적 원적原籍이 어디에 있는지를 끊임없이 환기시킨다”며 “그는 경험과 기억을 삶의 기저로 재현하며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 어둠을 밝히는 잔잔한 빛의 실마리를 찾고 ‘마음의 작품herzwerk’을 탐구하려는 지난한 시적 행보의 소산”이라고 소개했다.
박 시인은 “물론 단단하지 못한 시들이 다수이겠지만, 물렁한 시들로서도 거리낄 것 없다. 지난한 시적 여정을 일단락 짓고 싶은 마음 앞섰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빈 들녘을 바라보는 것같이 홀가분하고 허허롭다. 당도한 시집들을 발송하며 약간의 들뜸과 피로와 소란스러움을 즐기고 있다.”고 출간 소감을 전했다.
전남 영암 출생인 박정현 시인은 2019년 직지신인문학상 수상, 『불교와문학』 으로 등단했다.
2023년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창작기금을 받았다.
도복희 기자 phusys2008@dy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