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동양일보]쿠로노 타에루가 지은 <참모본부와 육군대학(최종호 역)>은 2차 대전 당시 26명의 일본의 전범들 대부분이 일본 육군대학 출신임을 주목한다. 패망을 앞당긴 일본인 세 명의 장성, 즉 무타구치 렌야, 스기야마 하지메, 도미나가 규지는 ‘3대오물(三大汚物)’로 불리는데, 이들은 모두 육군대학 출신이다. 이 대학을 차석으로 졸업한 이시와라 간지는 만주사변을 일으킨 주범이고, 자칭 '작전의 신' 츠지 마사노부는 육군대학의 주류인 군도조 출신이다. 패망 당시 총리였던 A급 전범 도조 히데키는 육군대학 삼수생 출신이고 그의 아버지 도조 히데노리는 수석 졸업자였다. 이 학교는 19세기 말에 독일의 전략가 헬모트 폰 모르케로부터 사사받은 일본 유학생들이 세웠다.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라던 프로이센의 대전략가 클라우제비츠와 달리 모르케는 전쟁은 자율적인 군사 논리와 독자적인 전쟁의 원리로 작동한다고 믿는다. 이 대학의 지독한 엘리트주의와 우월의식, 절대적 전쟁관, 폐쇄적 학교문화는 2차 대전 말기에 군국주의 토대를 확립하고 전쟁에 대한 집단적 광기로 분출되어 국가를 파국으로 이끈다.



지금 한국의 육군사관학교를 보면서 일본의 육군대학을 떠올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한국 현대사에게 어떻게 한 학교 출신이 세 번의 쿠테타를 저지르는가. 박재규와 김종필의 5·16, 전두환과 노태우의 12·12에 이어 올해 12월 3일의 친위 쿠테타까지 모두 육사 출신들이 일으켰다. 게다가 올해 내란 폭동 당시에는 12·12 당시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과 같은 의로운 장성이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사실 장태완은 육사 출신이 아니라 갑종 출신이었다. 그런 장군이 한 명만 있었어도 이번 내란 소동으로 인해 군인의 명예가 지금처럼 실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본 육군대학 출신들이 정치와 외교로 구성되는 정략(政略)에 무능하면서 군사력을 동원하는 전략(戰略)에만 치우쳤던 사고의 불균형은 21세기의 한국 육사 출신들에게서 동일하게 나타난다. 그러니 그렇게 무모한 내란 폭동을 감행할 수 있었던 것 아니겠는가. 세 번의 쿠테타 외에도 1952년의 부산 정치파동, 1972년의 유신헌법 선포 등 준쿠테타와 같은 계엄 사태도 사실은 엘리트 군인의 작품이었다. 폐쇄적 교육과 선후배 문화에다가 자신들은 특별하다는 선민의식이 만들어 낸 잘못된 전통이다.



일본 육군대학처럼 육군사관학교의 폐교를 고려할 때가 되었다. 원래 김대중 정부에서 각 군 사관학교를 통합하는 구조조정안을 성안하고도 실행에 옮기지 못했었다. 이제 그 개혁안을 실행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박근혜 정부 당시에 육사 출신들이 만든 계엄 문건을 8년이 지나 진짜로 실행하는 대담한 육사 출신들을 지켜보자면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게다가 육사 생도 1명을 양성하는 데 국민 세금 3억원이 투입된다. 종합대학 1개과 정도인 한 학년 270명 정원의 교육을 위해 600여명의 교직원과 근무자를 투입해야 하는 것 자체도 비정상이다.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소동에서 드러나듯이 그들은 이렇게 막대한 혜택을 받으면서도 국민 정신과 괴리된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한다. 4년 교육과정 자체가 사회와 완전히 괴리된 밀봉형 교육이어서 세상 물정을 제대로 알리도 없다. 이런 교육 체계는 진정한 군사 엘리트를 양성하는 게 아니라 군사 엘리트주의를 양산한다. 게다가 장교로 임관 5년 후에는 의사나 로스쿨 시험의 특전까지 부여한다는 특혜성 입시 요강을 보면 헛웃음이 절로 나온다. 일본의 군사 엘리트주의가 군국주의 일본의 토대가 되었듯이 지금의 육사 엘리트주의가 바로 쿠테타의 기원이 아니겠는가. 국민을 지키라고 준 총으로 국민을 겨누는 현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한다면 이제는 우리 사회에서 잘못된 군사문화의 뿌리를 단호하게 제거해야 한다. 그들이 진급과 보직에서 특권을 누리는 한 군부 일파의 쿠테타 위협이란 항상 안고 살아야 할 짐이 되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에서 드러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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