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탄핵 정국 속에 윤석열 정부가 추진해 왔던 교육개혁 과제가 추진력 상실 위기에 처했다.

100년을 내다본다는 교육 정책마저 졸지에 방향을 잃고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그동안 보건복지부가 담당하던 보육 업무가 교육부로 이관하도록 돼 있지만, 이를 뒷받침해 줄 후속 입법 절차가 발목이 잡혔다.

이에 따른 교사 자격과 선발 방법, 재정확보 방안 등 쟁점들이 그대로 파묻혀 버렸다.

정부가 ‘교육 개혁’의 한 축인 유보통합(유치원·어린이집 통합)에 대한 속도 조절에 나섰다.

교육부는 연말까지 통합기관 설립·운영 기준안을 확정하려 했던 기존 계획을 접고 당분간 관련 단체들과의 '이견 조율'에 집중하겠다는 구상이다.

설립·운영 기준안은 향후 제정해야 할 유보통합법의 뼈대다.

교육부는 유보통합 관련 최종안이 애초 연내 매듭짓기로 했던 계획보다 미뤄질 것이라고 22일 밝혔다.

이해관계가 첨예한 사안이라 지금 당장 기준안을 마련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 보여 관계 단체들의 요구나 제안 사항을 추가로 들어본다는 얘기다.

이처럼 교육부가 유보통합 추진 일정을 일부 변경한 데는 한국어린이총연합회(한어총) 등 관련 단체들의 강한 반발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교육부는 지난 16~17일 두 차례의 공청회를 열어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었으나 관련 단체들이 행사장 앞에서 물리력을 동원한 '반대 시위'를 하자 공청회 개최를 잇달아 취소한 바 있다.

교육부 주최, 육아정책연구소 주관으로 지난 16일 오후 한국교원대 청람아트홀에서 ‘영유아 교육·보육 통합기관이 설립·운영기준(안)의견 수렴을 위한 공청회’를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무산됐다.

당시 공청회에서는 유보통합 기관이 출범하면 만 3~5세 유아는 지금처럼 추첨제로 선발하고, 만 0~2세는 현재 어린이집처럼 상시대기제를 유지하는 안이 논의될 예정이었다.

영유아 교원 자격을 '4년제 영유아교육과' 졸업자에 한정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반대 단체들은 이러한 기준 시안이 현장의 목소리와 동떨어졌다며 공청회 개최를 막았다.

한어총은 “교육부는 16일 개최하는 공청회 발제문을 12일 오후에서야 공개했다”며 “한어총과 협의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어린이집 분야 토론자를 섭외하는 등 보육현장을 대표하는 한어총과 소통없이 밀어붙이기식으로 준비했다”고 성토했다.

이날 피켓시위 현장에는 한어총 6개 분과를 비롯해 한국가정어린이집연합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충북지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유치원위원회 등이 참여해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튿날 17일 오후 교원대 교원문화관에서 개최 예정이었던 교원 자격·양성체제 개편 의견수렴 공청회도 무산됐다.

교육부는 통합기관 기준안의 연말 확정은 무산됐지만 이르면 2026년부터 유보통합을 시행하겠다는 기존 로드맵에는 변동이 없다는 입장이다.

새해 초 다시 공청회를 여는 등 관계 단체들과 이견 조율을 거쳐 유보통합법 제정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년부터 영유아의 보육·교육에 관한 업무를 떠맡아야 할 각 시도 교육청으로서는 교육부와 국회의 처분만 바라보는 어정쩡한 입장이다.

유보통합은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하나의 통합기관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지역별로 보호자 수요에 맞도록 조정해야 한다.

유아교육과 보육 관계자들은 소속 집단의 이해관계보다는 영유아의 이익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교육부가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차질 없이 제대로 준비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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