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을사년 푸른 뱀의 새해가 밝았다. 뱀은 그리스에서는 치유와 의술의 상징, 고대 이집트에서는 신성함과 권위, 재생과 부활의 상징이다. 필자는 수의대 교수로서 실험동물학을 강의했고 이를 이용한 신물질의 안전성·유효성 평가기업의 대표이기에 새해가 되면 동물에 대한 덕담을 써왔다. 12띠 동물 중 쥐, 토끼, 원숭이, 닭, 개, 돼지는 신약 개발 과정에서 사람 대신 희생되는 실험동물이지만 뱀은 아니다. 뱀은 구약에서 아담과 이브를 유혹하여 선악과를 따먹게 한 악과 교활함의 상징이지만 신약에서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라 평가했다. 세계보건기구(WHO), 의사회, 수의사회 로고에는 재생과 치유의 상징인 두 마리의 뱀이 휘감고 있는 그리스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 지팡이가 그려져 있다. 이처럼 뱀은 예부터 건강, 불로장수, 치유 등 의학의 상징이었다.



필자는 시골에서 자라 뱀에 익숙하지만 지금 나이에도 뱀은 여전히 무섭고 징그럽다. 어린 시절, 시골 장터에서 뱀이 최고 정력제라 허풍떨던 뱀 장수 입담이 재미있어 뱀 장수 흉내를 내던 추억이 있다. 군 수색대 복무 시절, 뱀을 잡아 산 채로 먹는 생존 훈련 때문에 뱀을 자주 생식했었다. 대학 기생충학 수업에서 뱀에는 스파르가눔이라는 기생충 유충이 있어 감염되면 유충이 몸의 이곳저곳 옮겨 다닌다는 것을 알고 장기간 몸이 근질근질하면 뱀 기생충 때문이 아닌가 걱정했었다. 최근 나무와 야생화를 심고 정원을 가꾸면서 가장 두려운 게 뱀이다. 뱀을 만나면 긴 막대기에 올려 멀리 던져 보지만 뱀은 바로 앞 땅에 뚝 떨어져 어디론가 사라졌다. 얼마 후 풀밭에 숨어 있다 불쑥 나타난 뱀이 그때 그놈이어서 잡아 죽일 걸 하는 후회를 했었다.



WHO는 세계에서 매년 약 8.5만~14만명이 뱀에 물려 사망하거나 3배가 넘는 사람이 사지절단과 영구장해를 입는다. 동물들도 매년 뱀에 물려 사망한다. 2019년 청주 야산에서 실종된 여중생이 11일만에 인명구조견 달관에 발견되어 구조됐지만 같이 투입된 구조견 세빈이는 독사에 물려 신장기능 80%를 상실해 은퇴했다. 독사에 물렸을 때 뱀항독소로 중화시키지만 독 종류가 다양해 범용해독제는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뱀독은 가장 치명적인 독이자 한편 인간의 생명을 구하는 신비의 약으로 선악의 양면성이 있다. 뱀독 성분은 수십 종 단백질로 구성된 복합물로 뱀 종류에 따라 다르며 약리·독성기전은 잘 밝혀져 있지 않다. 뱀독은 크게 신경독, 출혈독, 세포독, 심장독으로 나눈다. 신경독은 코브라와 바다뱀에 있는 독으로 시각과 청각과 같은 감각신경뿐만 아니라 중추신경에 작용하여 전신마비, 심장과 호흡을 정지시킨다. 혈액독은 방울뱀이나 살모사에게서 볼 수 있는 독으로 혈액을 응고시키거나 역으로 혈액 응고를 방해하여 출혈을 일으키는 독으로 내출혈이나 혈액순환 장애를 유발한다. 세포독은 세포를 파괴하고 조직을 손상하는 독으로 물린 부위는 붓고 심한 통증과 함께 조직괴사가 동반된다. 심장독은 심기능을 방해하여 심장을 마비시키고 심박동을 느리게 하거나 불규칙하게 한다.



뱀의 혈액독 중 혈액 응고를 방해해 출혈을 일으키는 피그미 방울뱀 출혈독의 펩타이드인 엡티피바타이드는 혈전을 예방하는 혈소판응집 억제제로 관상동맥 성형술 등 심정지 치료에 사용된다. 역으로 혈액을 응고시키는 응고독은 신속 지혈제로 사용된다. 뱀독은 강력한 진통, 항염 효과가 있으며 마약성 진통제보다 부작용이 적어 척수신경근염, 류마티스관절염, 좌골신경통, 대상포진, 아토피피부염 치료에 사용된다. 브라질 독사의 심장독은 혈압을 급격히 떨어뜨려 독에서 추출한 펩타이드인 캡토프릴은 고혈압 치료제로 개발되었다. 세포를 파괴하고 조직을 손상하는 세포독은 암세포 성장을 억제하여 전립선암, 난소암, 대장암에 효과가 있다. 차의대 정광회교수는 한국 고유종 까치살모사 독에서 추출한 삭사틸린이라는 물질이 폐암, 대장암, 흑색종양 전이를 강력히 억제하는 것을 밝혔다. 뱀은 치명적 독으로 인간에 해를 끼치기도 하지만 이같이 다양한 난치병 치료제로서 인간의 귀한 생명을 구하고 있다.



뱀의 해! 푸른 뱀은 희망, 성장, 변화, 치유, 회복의 상징이다. 뱀독은 가장 치명적인 독성물질이지만 잘 다스리면 뛰어난 약이 되는 것처럼 우리가 겪고 있는 혼란과 격동을 극복해 치유하고 회복하면 더 큰 성장의 기회가 될 것이다. 새해에는 뱀의 지혜와 변신을 배워, 뱀처럼 지혜롭게 난국을 극복하고 뱀처럼 탈피하여 새롭게 거듭난 희망찬 대한민국이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