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화 시인, 시집 『핑크, 펑크』 출간

 

애먼 느낌으로부터 멀리 왔다 달무리가 예뻤다

산마루는 바람을 앉히고 어스름을 입는다

 

물살은 점자로 읽어야 한다 흐르는 서가엔 흰 돌이 있고

북방의 겨울이 있다 백 년 전 모던 보이는 필체가 선명하고

MZ들은 액정으로 모던을 읽지만

 

모든은 물살이고 모던은 여울이니까 서기 여울엔 잔돌이

많다 문장이 굽어지면 사람이 읽힌다 젖은 편지를 쓴 사람은

물의 나라로 떠났다

 

시원의 첫울음이 있고 광야의 모래바람 불고 물의 낱장은

자꾸만 뜯겨나가도 기어코 한 획인데

백 년 후를 먼저 살다 간 시인은 물에 녹은 메아리 그 부서진

소리에 산야는 화답하고 깊은 계곡을 안고 흘렀지

 

애먼 느낌으로부터 멀리 왔다 차가운 물살 때문에 가슴이 시렸다

물빛 도서관엔 호롱불 가늘게 흔들리는 문장이 많다

 

모든 문장은 심해로 가기 위해 발목을 씻는다

 

오래된 시문은 물속에서도 횃불인데 가슴을 녹이는 화톳불인데

 

물속에서 불타는 문장의 노을을 보려고

물빛 서가를 뒤적인다

-물빛 도서관전문

 

 

신재화 시인
신재화 시인

 

신재화 시인의 시집 핑크, 펑크가 도서출판 상상인에서 출간됐다. 이 시집은 1부 멀리 다녀온 말들, 2부 백 마리의 말이 끄는 식물원, 3부 당신도 어설픈 저녁이란 걸 나는 몰랐습니다, 4부 모든 문장은 심해로 가기 위해 발목을 씻는다고 구성됐다.

이병률 시인은 추천글을 통해 모란을 생각하다 저물기 전 그토록 세상의 시듦을 알아버려서 신재화 시인의 시는 고요하게 빛난다. 그토록 그래서 모든 문장은 심해로 가기 위해 발목을 씻는다라는 이 한 줄은 탄생한다.”고 언급한다.

황정산 시인·문학평론가는 신재화의 시들은 그리움이 우리의 삶에 어떻게 침윤되어 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우리의 마음속에 깊이 숨겨져 있는 슬픔을 끌어내고 그것을 치유한다. 그의 시어들이 슬프면서도 비통하지 않고 예리하면서도 따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시인은 중첩되는 환유를 통해 단어의 의미를 끊임없이 부풀리고 확장한다. 그래서 언어가 빈약한 의미로 납작해지는 것을 거부하고 새로운 의미로 풍부하게 되살아나기를 도모한다. 이런 그의 시작법은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그리움의 정서 또한 풍성한 깊이로 다가오게 한다.”고 설명한다.

신 시인은 오래 손 모아 쥐어도 뚜렷한 모습이 없었으므로 흐르는 집으로 고쳐지었습니다.누군가의 마음 하구까지 닿는 일이라면 좋겠습니다. 눈부처 맺힌 순간들이 등잔 아래 모여 그리운 얼굴로 소환하면 좋겠습니다.”라고 시인의 말에 적고 있다.

신재화 시인은 충남 보령 출생으로 현재 경남에서 거주하고 있다. 호미문학상(2021), 24회 여수해양문학상 대상 수상(2022). 오륙도신춘문예에 당선(2024) 됐다. 시집 핑크, 펑크. ()상동페이퍼 대표, ()다나마스크 이사로 활동 중이다.

도복희 기자 phusys2008@d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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