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로 중원교육문화원 도서관운영팀장

▲ 윤한로 주무관
얼마 전 ‘작가 강연 사회자 과정’이라는 연수에 참여하면서 대담 시나리오를 작성하기 위한 주제 도서를 정해야 했다. 그때 조원 중 한 분이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추천하셨다. 이 소설은 내가 읽어보고 싶었던 SF 소설 중 하나였기에 주저 없이 찬성했다. 아이들을 재우고 마음의 여유가 찾아온 늦은 저녁, 책을 펼쳐 든 순간, 나는 이미 이 책을 읽어본 적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러 소설의 장르 중 처음으로 SF 소설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아이작 아시모프의 단편 ‘최후의 질문’(The Last Question)을 접하면서였다. 이 소설은 15페이지 정도의 짧은 분량이지만, 우주의 종말과 탄생, 인류의 운명에 대한 깊은 철학적 질문을 담고 있어 많은 생각을 남긴다. 그 경험은 SF 소설이 현실적이지 않거나 과학적이지 않더라도 흥미 위주의 공상과학으로 치부했던 내 선입견을 크게 바꿔놓았다. 이후 대학 시절 도서관에서 프랭크 하버트의 ‘듄’, 아서 C. 클라크의 ‘유년기의 끝’ 등 여러 걸작들을 탐독하며 풍부한 상상력과 철학적 통찰을 얻는 시간을 가졌다. 그 후로는 눈에 띄는 SF 소설들을 종종 읽곤 했다. 특히 한국 작가들의 단편집에 매료됐고, 김초엽 작가의 단편집도 그 중 하나였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2019년 SF 소설 브랜드 허블에서 출간된 김초엽 작가의 단편 소설집이다. 2회 한국과학문학상 가작을 수상한 두 편을 포함해 총 7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돼 있다. 이 작품들은 과학의 발달로 인류가 우주로 진출하는 미래의 세계를 그리면서도, 여전히 존재하는 인간사회의 감정적 갈등과 소외 문제, 그리고 인간성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특히 이 책과 같은 제목을 가진 단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자신이 맡은 일을 인류를 위해 최선을 다해 수행했지만, 경제성을 따지는 정부의 정책에 의해 가족과 생이별하게 된 연구원의 이야기다.
“하지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조차 없다면, 같은 우주라는 개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우리가 아무리 우주를 개척하고 인류의 외연을 확장하더라도, 그 곳에 매번 그렇게 남겨지는 사람들이 생긴다면, 우리는 점점 더 우주에 존재하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려갈 뿐 아닌가?”
윗 문장에서 느껴지듯이 김초엽 작가의 작품은 과학적 상상력과 인간적 감정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그녀의 글은 단순히 미래의 기술적 발전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특히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과학기술의 발전이 가져오는 사회 및 개인적 갈등을 섬세하게 묘사하며, 독자로 하여금 기술의 발전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든다.
우리는 막연히 기술의 발전이 인간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 작가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반드시 인간의 행복을 보장하지 않으며, 새로운 형태의 소외와 고립, 그리고 그 속에서의 인간적 갈등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이야기한다. 김초엽 작가는 이러한 주제를 통해 독자에게 깊은 철학적 질문을 던지며,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단순한 SF 소설을 넘어, 인간의 본질과 사회적 관계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하는 작품이다. 김초엽 작가의 섬세한 필치와 철학적 사유는 독자로 하여금 책을 덮은 후에도 오랫동안 여운을 남기게 한다. SF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뿐만 아니라, 인간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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