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준 지명연구가·전 음성교육장

▲ 이상준 지명연구가·전 음성교육장

2025년 을사(乙巳)년 새해가 밝았다. 을사년은 60간지 중 42번째로서 청색의 '을(乙)'과 뱀의 의미인 '사(巳)'자로 구성되기에 푸른 뱀의 해라고도 부른다. 특히 금년은 광복 8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이면서 을사늑약 120주년 되는 가슴 아픈 역사를 가진 날이기도 하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의 상황은 120년 전 을사늑약으로 나라를 송두리쩨 빼앗기던 시기만큼이나 위태로운 지경에 있는 듯하다.
을사년은 우리 민족에게 참으로 역사적 사건이 많은 다사다난한 해로 점철되고 있는데 유난히 일본과의 악연이 많아 보인다. 일본을 벌벌 떨게 했던 이순신 장군께서 태어나신 1545년도,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던 1905년 을사늑약도, 1965년 한일협정도 을사년이었다.
1485년 을사년에는 조선의 법과 제도를 집대성한 경국대전이 완성되었고, 1545년 을사년에는 당파로 인한 권력다툼으로 많은 선비들이 희생된 을사사화가 있었으며, 1665년 을사년에는 왕권과 신권의 다툼으로 비롯된 상복 기간 논쟁이 나라를 혼란스럽게 하여 을사예송(乙巳禮訟)이라 부르고 있다. 1785년 을사년에는 정조 임금이 수원 화성을 건설하기도 하였다.
을사년에는 이처럼 크고 작은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사건이면서 우리 민족에게 가장 치욕적인 사건은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이라고 할 것이다. 일제는 을사보호조약이라 하지만 조약은 나라와 나라 사이에 맺은 약속이라는 뜻이므로 일제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제로 박탈하고 식민지로 삼은 조약이기에 조약(條約)이라 하지 않고 늑약(勒約)이라 불러야 마땅할 것이다.
을사년(1905년) 11월 17일, 경운궁에서 일본군이 에워싸고 위협하는 상황에서 어전회의가 열렸는데 한규설 등이 강하게 반대하여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폐회되자 이토 히로부미와 일본공사 하야시 곤스케, 일본군 사령관 하세가와 요시미치 등은 돌아가는 대신들을 강제로 다시 소집하여 일본 헌병 수십 명과 함께 회의장에 들어가 대신 각각에게 결정을 강요하였다. 일본의 강압에도 한규설과 탁지부대신 민영기, 법부대신 이하영 등은 반대 의사를 굽히지 않았으나, 학부대신 이완용, 군부대신 이근택,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농상공부대신 권중현 등은 조약 체결에 찬성하였는데, 이들을 을사오적이라 부른다.
더욱이 을사늑약(조약)은 을사오적이 저지른 일로서 고종황제의 서명과 도장이 없으므로 조약으로서는 무효인 것이다. 고종 황제는 이후 을사늑약(조약)이 체결된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매우 다양한 노력을 했지만 일제의 강압을 막을 수는 없었다.
특히 을사오적 중 권중현은 임진왜란 공신인 충장공 권율의 9대손인 아버지와 충무공 이순신의 9대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으로 뛰어난 부모 밑에서 못난 자식이 나왔다는 '호부견자(虎父犬子)'의 대명사로도 불린다.
우리말에 을씨년스럽다는 말이 있다. 스산하고 쓸쓸한 분위기나 사람이 가난한 모양을 뜻할 때 사용하는 단어다. 이 말은 ‘을사년스럽다’에서 왔다고 할 정도로 을사년의 고통스러운 기억이 한국인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에 스며 있는 것이다.
120년 전 을사년처럼 올해도 내우외환으로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다.
아무쪼록 엄청난 사건들과 함께 시작되는 금년 을사년은 허물을 벗고 크게 팽창하는 뱀의 재탄생과 치유력, 끈질긴 생명력의 기운을 받아 국난을 극복하고 새로운 변화와 혁신의 해가 되어주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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