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 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정아은 작가가 2023년 5월에 놀라운 책을 출판했다.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이라는 두꺼운 책의 마지막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에게 정면으로 일침을 놓는 장관의 모습을 상상하기 힘든 ‘인치’의 사회에 살고 있다. 이는 우리가 사회적 욕망 혹은 콤플렉스의 덫에 걸려 언제든 변심할 수 있는 일개 개인 지도자의 심기에 공동체의 많은 부분을 내맡기며 살고 있음을 뜻한다.” 이 구절은 마치 지난해 12·3 계엄 사태 당시 우물쭈물하던 국무위원의 모습을 정확히 예견한다. 대통령이 무리한 의대 증원을 추진하고 연구개발 예산을 대폭 삭감해도 저항하지 못했던 그들이다. 더 나아가 이런 구절도 있다. “상상력을 광범위하게 발휘해 전두환과 같은 인물이 또 한 번 나타나 일을 벌인다고 가정하면 쿠테타가 실패하리라 장담할 수 있을까? 시대 공기상 그런 인물이 나타날 가능성이 적다는 면에서 쿠테타가 일어날 것 같지는 않지만, 만에 하나 일어난다면 성공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힘들 것이다. 그 일을 막을 ‘선’이 안정적으로 형성돼 있지 않기에. 구성원들이 직접 나서서 ‘선’을 지키는 일에 헌신하는 동시에 다른 이들의 헌신을 예측하고 북돋는 풍토가 조성돼 있지 않기에.” 작가의 이 예측은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국방부 장관과 다수의 사령관들 중 누구도 계엄에 반대하지 않았고 오히려 적극 가담했다는 점에서 작가의 경고를 흘려들을 수만은 없다. 이번 계엄의 주동자들은 성공을 확신했던 것이다. 계엄 여파로 사회가 어수선하던 작년 연말에 정 작가는 불의의 사고로 49세의 나이로 작고했다. 작년 계엄 사태에 대한 작가의 더 깊은 통찰력을 들을 수 없음이 안타깝다.
윤석열 대통령이 체포됨으로써 이번 계엄의 주체 세력은 대부분 제거되었다. 그러나 윤석열은 제거되었지만 그를 지지하고 추종하는 ‘윤석열 현상’은 제거되지 않고 오히려 더 강화되었다. 윤 대통령 탄핵 반대 여론이 30% 중반에 육박하고 여당의 지지율은 무섭게 치솟아 야당을 앞질렀다.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새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정치권의 비전과 희망보다 이 국면에서도 얄팍한 정치적 이익을 도모하는 책임 전가와 국민 갈라치기가 더 기승을 부린다. 이 당혹스러운 현상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앞으로 어떤 지도자가 등장하더라도 그의 개인적 야심과 변덕, 보복 심리에 나라가 크게 흔들릴 것이라는 두려움과 불안이 국민들 사이에 여전히 팽배되어 있음이다. 그것이 계엄의 피해자인 야당에게도 정치적 반사이익을 도모하지 말라는 경고로 읽힌다. 더 극단적으로는 음모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세력에게는 다음 계엄은 잘 준비해서 반드시 성공시키자는 의지로도 읽힌다. 이들은 2021년 1월에 대통령 선거를 부정선거라며 의사당에 폭도를 난입시킨 도널드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으로 귀환했다는 사실에서 용기를 얻는다. 1월 20일에 트럼프가 집권하면 우리를 구해줄 것이라며 트럼프 지지자들의 모자와 구호까지 흉내 낸다.
정 작가의 경고처럼 아직 우리 사회는 아직 성숙한 민주 국가가 아니다. 무엇보다 국민이 극심하게 분열되어 합의와 숙의에 기반한 민주주의 규칙이 설 자리가 매우 좁다. 세대와 성별과 지역으로 분열되고 강성 지지자들이 정당을 좌우하는 지금의 정치 환경이 지속된다면 다음 친위 쿠테타는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먹고 살기 어려운 국민에게는 민주주의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계엄 지지자들은 작년 계엄의 실패를 두고두고 교훈 삼아서 더 대담하고 체계적인 전복형 쿠테타를 준비를 할 것이다. 자유로부터 도피하여 자학적인 질서를 갈망하는 극우 대중운동을 전개함으로써 정치인을 결박하고, 더 나아가 군대와 경찰을 동원한 병영 국가를 통치 모델로 삼고자 할 것이다.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하며 다시 봉기할 기회를 노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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