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 현장에 가보면 주최 측 참가자와 대화를 하며 평화로운 시위 진행을 이끌어 내는 '대화 경찰'이 있다. 이들은 각 집회 일정과 동선을 미리 파악하고 조정해 충돌을 방지하고 갈등이 발생하면 대화로 상황을 진정시킨다. '대화 경찰'이라는 역할은 정보관들의 주요 업무 중 하나다.
정보관(IO) 생활을 오래해 ‘정보통’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다. 바로 정년을 1년 앞둔 반정섭(59·사진) 현도파출소장(경감)이다.
충북 음성 출신인 그는 청주 신흥고(4회)와 배재대를 졸업하고 1992년 입직해 33년의 경찰 생활 중 20년 동안 정보 업무를 맡아오다 지난 1월 31일 현도파출소장으로 부임했다.
정보관으로 활동 당시 반 소장이 대표적으로 활약한 일은 2004~2007년 하이닉스 매그나칩 하청 노동자들과 하이닉스 간 갈등의 최전선에서 첩보전을 펼쳐 시위로 인한 피해 최소화에 힘썼던 것이다.
그 당시 정부는 중대 산업인 반도체 산업을 지키기 위해 경찰력을 투입해 하이닉스 공장 안으로 진입하려는 시위대를 막아섰다.
반 소장은 “노조는 죽창, 화염병, 쇠파이프를 들고 경찰은 최루탄, 물대포, 방패와 컨테이너로 입구를 막으면서 전쟁터를 방불케 했었다”고 회상했다.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그는 노조 관련자들과 수시로 만나 대화하면서 정보를 얻고 경찰과 노조 사이에서 조정·중재안을 내놓는 유일한 채널 역할을 다했다.
반 소장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갈등이 악화돼 2006년 9월 하청 노조원들이 충북도청 옥상을 9일간 점거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는 9일 동안 밤낮없이 퇴근하지 않고 옥상에 있는 노조원들에게 “다칠 수 있으니 반항하지 말고 안전히 내려오라”고 지속해서 대화하고 설득했다. 결국 옥상 점거를 했던 노조원들은 특공대에 의해 안전하게 진압됐다.
"노조 간부 중 자신의 집 마당에서 삼겹살 한 번 안 먹어본 사람이 없다"는 그는 새벽 시간에도 억울함을 호소하는 연락들에도 귀찮아하지 않았다. 마음으로 내 가족이라 생각하고 일해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머리로는 항상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했다.
이제는 소장으로서 “주민들을 잘 섬기고 봉사하며 더 안전한 현도면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는 그는 “현도면은 어진 사람들이 사는 곳인데 어진 사람들이 편안하게 잘 사는 곳으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집 앞 마당에서 꽃을 가꾸는 것이 취미라는 그는 "은퇴 이후에는 나의 정보관 생활을 다룬 책을 쓰고 싶다"고 전했다.
가족으로 자영업을 하는 부인 박미서(58)씨와 재형(30·육군 대위)·수연(29·세종교통공사)·주윤(23·대학생) 2남 1녀가 있다. 항상 밤과 낮, 평일과 주말 없이 일에 매진해 온 그는 “가족들과 크리스마스에 같이 영화를 예매하고 보러 가던 중에도 일 때문에 못 갔던 적이 있는데 미안했었다”며 “일하는 데 있어서 가족들이 잘 이해 해줘서 항상 고맙다”고 전했다. 이태용 기자 bigbell@dy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