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정 부여군 송정그림책마을 사무장

▲ 이선정 부여군 송정그림책마을 사무장

도시에서의 삶을 돌아보면, 우리는 꽤 자주 이사를 다녔다. 직장 때문에, 더 나은 교육 환경을 찾아서, 혹은 더 좋은 집을 마련하기 위해 끊임없이 이동했다. 그런데 시골로 내려오는 순간, 마치 인생의 마지막 정착지를 찾는 것처럼 모든 것을 신중히 따져보고, 수년간 준비하며, 한 번 정착하면 뼈를 묻을 마음으로 내려오는 사람들이 많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미리 살아보기’ 프로그램까지 이용해 충분히 검토한 후에야 결정을 내리는 모습은 도시에서의 주거 선택과는 사뭇 다르다.
그러나 현실은 기대와 다를 수 있다. 2022년 농촌진흥청 귀농귀촌 실태조사에 따르면 귀농귀촌인의 30~40%가 5년을 넘기지 못하고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시로 돌아간 이들은 대개 경제적 문제나 텃세를 이유로 들고, 언론에서는 종종 귀농한 이들에게 가해지는 텃세나 마을 상납금 요구, 살인사건 등 부정적인 사례를 부각하며 농촌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심어주기도 한다. 한 마디로 ‘기대와 다르다’는 것인데, 사실 만족하며 정착하는 것이 훨씬 드문 일이다. 반세기가 넘게 한 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 공동체에 비집고 들어가서 내 집처럼 편안하게 살겠다는 게 더 비현실적이다.
우리나라의 단위마을(행정리) 수는 3만5000개에 달한다. 도시에서 볼 때 농촌 마을은 풍경도 사람도 다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농촌에 살아보면 모든 마을이 다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심지어 1리, 2리로 나누어진 바로 옆 마을과도 완전히 다른 세상처럼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3만5000개 만큼의 다양한 성격, 문화, 역사가 존재하는 것이다. 여기서 한두 마을을 경험해 보고 ‘아, 역시 농촌은 나한테 안 맞아’라고 결론 내리는 건 성급한 게 아닐까?
도시에서도 좋은 이웃을 만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평생을 살아온 동네에서도 이웃과 깊은 유대감을 형성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시골에 내려오면 우리는 이상하게도 ‘좋은 공동체’를 만나야 하고, ‘따뜻한 이웃’을 가져야 한다는 기대를 품는다. 그 기대가 충족되지 않으면 실망하고, 좌절하며 결국 다시 도시로 발길을 돌린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도시는 늘 선택이 열려 있는 공간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동네면 다른 곳으로 이사하고, 직장을 바꾸고, 취향이 맞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나름의 생활 방식을 만들어갔다. 그렇다면 시골살이도 그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 한 번 들어가면 반드시 정착하고 성공해야 한다는 부담감 없이, 다양한 곳을 경험하며 자신에게 맞는 환경을 찾고, 어울리는 공동체를 만나고, 자리를 잡아가면 된다.
우리는 모두 새로운 곳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심지어 도시의 새로운 동네에서조차 말이다. 그러니 시골살이도 그렇게 가볍게 받아들이면 어떨까. 나의 두 번째 인생이 될지 아닐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이곳에서 살아보는 것도 내 인생의 한 과정’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새로운 경험을 즐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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