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대신 십자가 짊어진 구레네 시몬처럼 생가를 멍에로 메다
가치 복원이 우선...‘생가도 미술관으로, 마을도 미술관으로’
겨우내 오장이 활활 달아오르고 / 여름 내내 오한으로 뒤척이던 / 조선의 젊은이 하나 / 휘적휘적 떠나가더니 / 천상天上의 꽃층계 저 켠 / ‘보보’와 뽀뽀하고, ‘하백’ 품에 잠도 자더니 / (중략) / 바람도 충청忠淸에 이르면 청풍淸風이 되고 / 달빛도 청원淸原에 이르면 명월明月 되나니 / 세상 빛 모이어 뫼 이룬 / 이 팔봉에 내리는 이 / 그대 바로 청학이었음을 /
-조철호 시 ‘팔봉八峰에 청학靑鶴 내리어 –정관 김복진 선생을 기리며’ 중
지난 21일 오후 3시 청주시 서원구 남이면 팔봉리 293-2, 조그만 시골마을의 허름한 가택 마당에 사람들이 북적였다. 한국 최초의 근대 조각가 김복진(1901~1940) 생가에서 열리는 첫 전시를 축하하고 선생의 예술정신을 기리기 위한 자리다.
생가에는 박순양(69) 팔봉리 이장을 비롯한 마을주민들과 도종환 전 국회의원, 김병우 전 충북도교육감, 김갑수 충북문화재단 대표이사, 진운성 연극인, 박완희 청주시의원, 뒤편엔 김영환 충북도지사의 부인 전은주 여사의 모습도 보였다. 이날 40여 명의 방문객을 환한 얼굴로 일일이 맞이한 사람, 바로 김복진 생가 지킴이 오헨리(65) 용인대 객원 교수를 만났다.
‘그리움이 머무는 곳’.
청년 실험작가 윤지훈의 전시 주제처럼, 또 어린 딸 ‘보보’를 먼저 떠나보내고 아내 ‘하백’을 홀로 남겨둔 채 39살의 나이에 타계한 선생의 생애처럼, 생가는 오 교수에게도 ‘사무치는 그리움’ 그 자체다.
그가 이날 행사를 연 조철호 시인(동양일보 회장)의 헌시 낭송을 들으며 돌아서 눈시울을 훔친 이유도 그래서이리라.
인터뷰에 들어서자 만감이 교차하는 듯한 표정으로 지난 시간을 회상하는 오 교수.
그는 1961년 이곳 팔봉리에서 태어나, 경기대 환경조각학과를 졸업하고 경기대학원, 가톨릭대학원을 거쳐 목원대 대학원에서 조형예술학 박사를 취득했다.
2021년 1월 말, 지금도 마을에 살고 있는 구순 노모를 방문했다가 잠시 들여다본 김복진 생가에서부터 그의 ‘멍에’는 시작됐다고 했다.
금방이라도 귀신이 튀어나올 것 같은 흉가는 철조망으로 둘러 막힌 채 마당에 누군가 닭과 개를 키우고 있었고, 폐기물과 버려진 농기구가 뒤엉켜 쓰레기장으로 변해 있었다. 명색이 ‘한국 근대 조각의 아버지’라는 김복진 생가의 참혹한 광경에 그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다. 그리고 그는 예술계 지인의 충고를 받아 토지주를 수소문하고 보름 만에 생가를 매입하기에 이른다.
그때를 떠올리며 “시골에서 올라오는 길에 붙잡혀 얼떨결에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고 제자가 된 구레네 사람 시몬처럼, 나도 아무런 마음의 준비 없이 갑자기 김복진의 후손이 된 듯 멍에를 멘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는 오 교수.
그도 그럴 것이, 닭이라도 쫓아내고 쓰레기라도 치우자는 맘으로 시작한 그의 열정은 오래 갈 수 없었다.
그해 7월, 1남 1녀 남매와 자신을 남겨둔 채 아내가 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옛말에 ‘묫자리 잘못 쓰면 집안이 망한다’고 했던가. 생가터 잘못 매입해 이런 일이 생겼나, 흔들리는 멘탈로 스스로 대못을 박으며 자학하고 칩거하기를 4년.
하지만 그는 “등짝에 올려진 십자가처럼 떼어낼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다”고 했다. 이대로 포기하면 그 죄책감이 평생 남을 것 같았단다.
결국 지난해 11월 생가 ‘모닥불 포럼’을 시작으로 짐을 벗어내기 시작했다.
마을주민과 뜻있는 지인들의 관심과 응원 속에, 조형미 있는 생가의 골격이 드러나고 주저앉을 것 같았던 본채에 이일호(㈜한울한옥) 대목장 이수자의 손길로 기둥이 세워지고 박태준 ㈜삼주전기 대표의 후원으로 불이 밝혀졌다.
현재의 생가 소재지 주소에 ‘김복진’ 이름 석 자가 적힌 일제강점기 토지원장이 발견되고, ‘광무 5년 신’(光武五年 辛. 1901년 신축년辛丑年으로, 선생이 태어난 해)이라고 쓰인 상량문도 드러나며 생가 진위 논란을 불식시키고 미흡하나마 첫 전시로 서문을 열었다.
그는 ‘생가도 미술관으로, 마을도 미술관으로’라는 캐치플레이즈를 스스로 내걸고 3월 전문가 심화 토론회, 5월 팔봉리 김복진 조각페스타, 김복진 순례 걷기대회, 8월 김복진 추모제 및 김복진연구소 개설, 10월 팔봉리 전국 조각가 캠핑, 11월 생가 모닥불 포럼 등을 계획하고 있다. 생가 전시는 언제든 개방이다.
이제 그는 “그리움은 멍에가 아니라 사랑”임을 안다. 그래서 꿈꾼다.
김복진 생가를 중심으로 팔봉리 마을 전체가 예술촌으로 거듭나기를. 주변의 도움으로 일궈놓은 씨앗이 초석이 돼 청주시와 충북도의 주도 아래 전국으로, 세계로 이어지는 조각가 마을의 플랫폼이 되기를. 박현진 문화전문기자 artcb@dy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