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병철 단양군 정무보좌관

▲ 방병철 단양군 정무보좌관

칼날이 스친 자리마다 흔적이 남는다. 도마 위 깊게 새겨진 자국, 상처인가, 기억인가. 붉은 국물에 젖어든 오뎅 한 조각을 본다. 흔들린다. 포장마차 불빛처럼, 저녁 골목을 비추듯. 허기를 태우는 바람, 입김처럼 스며드는 추억이다. 국물은 온기다. 혀끝에서 사라지고도 가슴속에서 다시 끓어오르는 온기다.
사십 년 전, 제천 중앙시장. 종이컵 속 따뜻한 국물이 지친 하루를 녹인다. 사라진 가게, 잊힌 이름들. 그러나 국물은 여전히 남아 있다. 혀끝이 아니라 가슴에 스며든다. 계절을 넘어, 지금 이곳까지 스며든다. 붉은 국물 속에서 시간이 피어난다.
이한교 제천시 미래전략팀과 그의 팀원들이 기획한 ‘빨간 오뎅 축제’. 노인의 손끝에 남은 첫 국물의 기억, 골목을 스치는 바람의 맛, 사람들 사이를 오가는 웃음소리. 혀끝에서 지워지지 않는 이야기들. 축제는 소비가 아니다. 그것은 기억을 빚어내는 손끝의 온기다. 국물에 적신 오뎅 한 조각, 그 속에서 추억이 피어난다. 축제는 숨을 얻는다. 그리고 그 숨결은 지역을 감싸며 도시의 생명이 된다.
제천의 농산물이 양념이 되고, 여행자의 손끝에서 다시 끓는다면. 축제는 단순한 행사가 아니다. 그것은 도시의 결이 된다. 시간은 빠르다. 기억은 짧다. 그래서 축제는 강렬해야 한다. 붉은 국물이 퍼지는 SNS, 입술을 붉게 물들이는 챌린지, 골목마다 스며드는 짧은 영상들. 그렇게 도시의 얼굴이 되고, 사람들을 부른다. 제천의 바람 속에서 빨간 국물이 피어오를 때, 우리는 한 계절의 온기를 나눈다.
소백산 자락, 또 하나의 붉은 잔상. 한낮에도 서늘한 골짜기, 눈 녹은 자리마다 초록이 돋아난다. 달래, 취나물, 곰취, 참나물. 깊은 바람이 길어 올린 향기. 들숨으로 마시면 숲이 스며들고, 날숨으로 뱉으면 계절이 흐른다. 나물 한 줌 속에 시간이 깃든다.
김영준 단양군 예산팀장이 기획 중인 ‘나물 부침개 축제’. 도마 위에 내려앉은 봄의 향기. 기름 위에서 지글지글 부서지는 초록의 숨결. 부침개 한 장 속에 단양의 봄이 익는다. 땅이 내어준 숨결, 우리가 함께 태운 계절의 흔적이다.
그러나 축제는 찰나로 끝나선 안 된다. 도마가 칼을 기억하듯, 손끝이 산나물의 향을 기억해야 한다. 시간은 흐르고, 계절은 다시 오지만, 어떤 맛은 기억을 거슬러 되살아난다. 빨간 오뎅이 남긴 온기처럼, 단양의 나물도 그렇게 다시 피어나야 한다. 붉은 국물이 골목을 적시듯, 나물 부침개가 바람을 품고 도시를 적셔야 한다. 한 입 베어 물 때마다, 단양의 봄이 혀끝에 스미는 순간이 머지않았다.
손끝에 남는 밀가루의 감촉, 기름에 지글지글 부쳐지는 소리, 그리고 한 조각을 반으로 갈라 나누어 먹는 손길을 마주한다. 이 모든 순간이 단양의 봄을 담고 있다. 축제는 단순한 행사가 아니다. 그것은 지역의 시간과 계절, 사람의 숨결을 함께 엮는 과정이다. 나물 부침개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그것은 땅에서 자란 기억의 조각이며, 그 조각들이 모여 도시의 이야기가 된다. 국물을 들이켜듯, 부침개를 한 입 베어 물며, 우리는 그 이야기를 다시 써 내려간다.
그리하여, 우리가 오래도록 기억하는 계절이 된다. 한 조각 부침개 속에, 단양의 바람과 시간이 머문다. 그리고 그 시간이, 또다시 내년의 봄을 향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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