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기 위한 사진이 아니라 무엇을 담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작가, 교육자, 전시기획자로 국내외, 선후배 연계작업 전념

▲문상욱 사진작가·예술곳간 관장
▲문상욱 사진작가·예술곳간 관장

[동양일보 박현진 기자] 모충동 고갯길 어디쯤인 것 같다. 주소만으로는 어려워 주변 건물 옆에 빨간색 화살표로 표시한 사진을 받고는 겨우 신축인 듯 깔끔한 3층 건물을 찾을 수 있었다.

‘흑백사진연구소’라는 작은 간판이 걸린 출입문을 열고 옛날식 가파른 회전계단을 걸어 올라가서야 “30년 된 건물 리모델링하더니 임대료가 두 배로 올랐다”며 껄껄 웃는 오늘의 주인공을 만날 수 있었다.

문상욱(72) 사진작가다.

그가 관장으로 있는 중앙동 예술의 거리 내 아트스페이스 예술곳간과는 달리, 이곳 개인 작업실은 80여 평 공간에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응접실, 작업실, 암실, 공동작업실, 창고 등에 인화기, 확대기, 소부기(자외선발생기) 등 전문 기구들이 들어서 있는 게 그 규모가 놀랍다.

그중 얼마 전 전시를 끝내고 미처 포장을 풀지 못한 액자들 뒤로 켜켜이 세워져 있는 작품들에 시선이 머물렀다. 문 관장은 분명 사진작가인데 보이는 작품들은 사진인지 그림인지 조각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그랬다. 그는 주로 풍경을 많이 찍는 ‘전통사진’이라는 고유한 장르를 해체하고, 다른 매체와의 결합을 시도하는 ‘현대사진’ 작가이다.

미시적인 방식의 ‘프랙탈’(반복)과 거시적인 안목으로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해주는 ‘카오스’(혼돈)의 세계를 뫼비우스의 띠처럼 서로 이어주면서, 자연을 거스르고 훼손하는 과학과 문명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의 사진은 전용 인화지 위에서만 살지 않는다. 때로는 한지에, 수채화 그리는 머메이드지에, 또 때로는 알루미늄과 구리판에 조명되고 어두운 부분을 깎아내 입체감을 드러내며,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AI 작업을 통해 융합을 시도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사진이되, 그림이고 조각이며 컴퓨터 그래픽이기도 하다.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른 영역의 예술을 잇고 있다고 할까.

 

“어떤 의지나 메시지를 담고자 하는 현대사진은 인문학 기반 위에 존재한다”는 문 관장.

그는 “사진작가는 카메라를 들고 ‘찍기 위한 사진’을 찍는 게 아니라 ‘무엇을 담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지론으로 인해 때로 무엇을 찍을까를 결정하는 데만 몇 년씩 걸리기도 한단다.

 

문 작가는 1953년 음성 맹동면 출신으로, 무학으로 한약방 국가고시에 합격한 부친의 3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다.

청주 교동초, 대성중, 운호고를 거쳐 충북대 수학교육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30여년 간 교직에 몸담았다.

 

33살 때 취미로 사진을 시작한 뒤 외길 40년.

대학 C.C인 아내 김영옥(71)씨의 전폭적인 내조와 응원 ‘덕분’에 아내보다 9년 일찍 명예퇴직을 ‘허락’ 받고 나이 60에 중부대 대학원에 또 진학, 사진과 시각예술 공부를 더 할 수 있었다.

다수의 개인전과 초대전, 국내외 단체전 참여를 비롯, 국제교류전을 기획하며 이스탄불비엔날레 특별상, 한국지역방송 예술인 부문 대상, 일·프 국제현대미술전 대상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 <잠자리와 카오스>, <카오스와 프랙털>, <물길-세종대왕 꿈을 담다>(공저) 등을 펴냈고 충북예총 회장, 충북예술문화정책연구원 원장, 국제사라예보겨울축제 디렉터, 한국흑백사진페스티벌 집행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이마고 사진학회장, 국제현대미술협회 부회장, 서원대 평생교육원 강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진작가이자 사진 교육자, 전시기획자로서 문 관장은 올 4월 호주 시드니 한국문화원 전시를 시작으로 5월 청주시립미술관, 6월 도쿄 국립미술관 초대전, 8월 헝가리 부다페스트 전시 기획, 9월 네오아트센터 개인전 등을 준비하며 후배 양성을 비롯, 국제 네트워크 형성을 통한 국내외 작가의 연결작업에 전념하고 있다.

그는 “청주가 타 지역에 비해 대학에 사진학과도 없고 붐이 일지 않은 것이 안타깝다”며 “카메라를 들 힘만 있다면, 사고를 지속할 뇌만 살아있다면, 언제까지라도 사진작업을 하며 당당하게 내 역할을 해 나가겠다”고 환하게 웃는다.

냉장고에 음식 대신 필름을 잔뜩 쟁여놓은 노익장의 열정은 오늘도 내일을 향해 달린다. 박현진 문화전문기자 artcb@d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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