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체능에 공부도 잘한 ‘만능 날범’… 드럼까지 쳤던 낭만파
이상재 전 의원과 인연, 정치 첫발… ‘발품’의 신념 지켜
성격, 담백‧진솔한 ‘날것’ 마인드… 신의 중시 실용주의자
정치적 욕심 ‘별로’… “공주를 미래형 메가시티 만들고파”

담백 진솔하다. 있는 그대로 말하는 날것의 성격. 에둘러 말하는 정치인 특유의 우회적 화법도 싫어한다. 주민 건의를 듣고 규정상 안되는 거 뻔히 알면서 한번 검토해 보겠다사기같은건 절대 안친다. 하지만 될수 있는건 바로 해준다고 약속한다. 옆에 간부들 앉혀놓고 이장님, 우리 국과장이 예산타령 하면 저한테 전화하세요라고 못박는다. 공무원이 게으르거나 질질 끌면 절대 안봐준다최원철(61) 공주시장. 초선이다. 시의원 재선 정도의 경력조차 없고 시장 첫 도전에 당선으로 직진했다. 그런데 3선 쯤 되는 내공과 아우라를 풍긴다. 과묵하고 진중한 선비의 향기가 나는 그의 인물 속살에 천착해 본다.

짜그락, 짜그락. 자카드 직물 기계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번성했던 공주시 유구에서 아버지 55세 되던 해 늦둥이로 태어났다. 부모는 여관식당을 운영해 경제적으로 유복했다.

당시 2교대의 직물공장 여공과 근로자들이 식당여관을 분주하게 드나드는 모습을 보며 자란 최시장은 훗날 자서전에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생생한 숨소리, 나는 그 에너지가 좋았다고 술회했다.

소년 시절의 최원철 시장. 덩치가 크고 리더십이 있어 친구들 사이에서 '짱'을 먹었다.
소년 시절의 최원철 시장. 덩치가 크고 리더십이 있어 친구들 사이에서 '짱'을 먹었다.
최 시장은 공부도 잘해 유구중을 수석 졸업한 뒤 명문 공주사대부고에 합격했다. 맨 오른쪽이 최 시장.
최 시장은 공부도 잘해 유구중을 수석 졸업한 뒤 명문 공주사대부고에 합격했다. 맨 오른쪽이 최 시장.
최 시장의 운명을 바꾼 만남, 공주를 지역구로 둔 이상재 전 의원과 한솥밥을 먹으며 정치를 시작했을때의 모습.
최 시장의 운명을 바꾼 만남, 공주를 지역구로 둔 이상재 전 의원과 한솥밥을 먹으며 정치를 시작했을때의 모습.

어릴적부터 질박한 삶의 현장에서 대중 속의 자신, 서민들 삶의 한가운데 서 있는 자신을 본 것이다.

부친 고 최흥래 옹은 강직한 성격이었다. 젊은시절 반공 활동에 나섰고 한국전쟁 후 부역자 처벌 과정에서는 억울하게 죽을뻔한 사람을 살린적도 있다고 한다.

그는 어린 최시장에게 정치는 적()을 만들기도 하니 그쪽에는 얼씬도 마라고 당부했다. ‘사람 팔자모를 일이다.

최 시장은 공부를 잘 해 초중학교 때 전교 1등은 기본이었다. 기골이 장대(현재 신장 180cm)먹고 쌈박질도 물러서지 않는 날범이었지만 유구중을 수석 졸업한 뒤 명문 공주사대부고에 너끈히 합격했다.

훗날 교수로 이름값을 한 동기동창 원성수 공주대 총장에게도 최 시장은 수학을 가르쳐 주었다.

그는 스포츠도 뒤지지 않는 만능맨이다. 환갑이 지난 지금도 생활축구대회 선수로 뛸 정도의 축구광인데다 태권도 공인2, 합기도와 해동검도까지 5단쯤 되는 강호의 무림고수.

노래실력 역시 복면가왕뺨칠 정도로 뛰어난데다 대학가요제 출전하려고 고교때 밴드를 결성해 드럼까지 쳤다. 공주에서 링고스타(비틀즈)의 강림을 볼 뻔 했던 낭만파다.

최 시장의 이런 다재다능을 기억하는 이준원 전 시장은 1년 선배인 그를 문무를 겸비한 사람으로 평가한다.

최 시장에게 운명의 순간이 다가온 건 1988년 어느 여름날이다.

인천대를 졸업하고 취업 준비를 하던 그 해 7, 지인이 다짜고짜 민주정의당 이상재 의원에게 데려가 소개해 주는게 아닌가. 그 날로 이 의원의 보좌관이 된 청년 최원철은 민정당 공주시 지구당 청년부장을 맡아 정치의 길을 걷게 된다.

행사장에서 노인들에게 다가가 고개 숙여 민원을 듣고 의견을 청취하는 최시장.
행사장에서 노인들에게 다가가 고개 숙여 민원을 듣고 의견을 청취하는 최시장.
최 시장은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 항상 진솔한 자세로 이야기를 듣고 적극적으로 답한다. 때론 참모들이 할 일이 없다.
최 시장은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 항상 진솔한 자세로 이야기를 듣고 적극적으로 답한다. 때론 참모들이 할 일이 없다.
최 시장이 시장실에서 창밖을 보며 업무 구상을 하고있다. 그는 공주를 대전 세종과 함께 상생하는 메가시티로 만드는게 꿈이다.
최 시장이 시장실에서 창밖을 보며 업무 구상을 하고있다. 그는 공주를 대전 세종과 함께 상생하는 메가시티로 만드는게 꿈이다.

그 때 좋은 정치는 발끝에서 나온다는 걸 배웠다. 최 시장에게 이 진리는 신앙이었다.

정치 지형이 크게 변한 2015. 20대 총선을 앞두고 3선이던 정진석 국회의원(현 대통령 비서실장)이 손을 내밀었다. 새누리당 공주시 당협위원회 사무국장을 맡아 달라는 제안이었다.

새 둥지를 튼 최 시장은 발이 부르트도록 읍면동 구석구석을 누비며 지역정치를 배웠다.

그리고 드디어 2022년 시장도전 첫회에 김정섭 시장을 누르고 왕관을 썼다. 현역 프리미엄의 김 시장을 10.3%p 차이로 크게 누른 원동력은 이상재 의원으로부터 배운 발품 정치였다.

아이러니는 정치권에 몸담은게 무려 33년인데 60세 다 돼서야 시장에 도전했다는 점이다. 최시장의 절친 A씨는 원철이는 출세욕이 없어. 오죽하면 재선(再選) 도전도 안한다는 소문까지 나돌까?”라며 웃는다.

재임중 시정을 빛낸 그의 성과는 셀 수 없이 많다.

공공유관기관 유치와 백제문화촌 조성, 공주~세종 광역BRT 구축, 송선동현지구 도시개발, 2금강교 착공, 52촌 사업과 저출산과 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해 추진한 생활인구 중심의 정책 등 모두 내외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시장으로서의 욕심은 "역사 문화 관광 교육의 도시이자 금강 계룡산 등 수려한 자연환경을 갖춘 공주를 인근의 400만 인구와 함께 공유하는 미래형 메가시티로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자신에 대해서는 시장-자연인 구별없이 신의를 바탕으로한 실용주의자"로 정의한다.

스포트라이트 욕심도 없이 우직하게 일하는 황소시장, 그는 서툰 사람의 말도 귀담아 듣는 품격의 현자. 공주 유환권 기자 youyou9999@d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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