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종구 바이오톡스텍 대표·충북대 수의대 명예교수
작년 말 비상계엄을 겪으면서 47년 전 군시절이 생각났다. 1978년 11월 말, 제대를 2주 남긴 말년 병장 때였다. “강병장! M16 소총 4정 다시 돌려주마~상부에는 이상 없다고 즉각 보고해”. “예 충성~감사합니다”는 경례와 함께 지난밤 백소령이 몰래 가져간 총을 돌려받았다. 와~하는 내무반 전우들의 함성과 함께 주번사관과 선임하사는 “강병장 수고했어” 감사함에 어쩔 줄 몰랐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당시 충남 홍성군 광천읍 해안에 무장공비가 침투하여 양민을 학살하고 도주하여 전군에 비상경계령이 내렸다. 병기관리 담당자인 필자는 매일 출동인원과 출동장비 현황을 상부에 보고했다. 출동인원과 출동장비가 일치하지 않으면 총기분실이나 병력이탈 사유를 밝혀야 하기 때문이다. 사건 당일 제대병 회식이 있어 내무반 전우들이 가볍게 음주 후 취침했는데 불침번이 깜박 조는 동안 주번사령인 백소령이 내무반에 들어와 총기 4정을 몰래 들고 나갔다. 다음날 새벽 백소령이 비상을 걸었다. 완전군장 집합 후 밤새 깜쪽같이 총기가 사라진 것을 알아챈 4명의 전우들은 “내 총 없어졌어” 미친 듯이 외쳤다. 그때서야 백소령은 경계근무 태만에 대한 자신의 보복행위라 고백했다. 당직인 불침번, 선임하사, 주번사관, 중대장까지 백소령에게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지만 총기를 돌려받지 못했다. 이런 행동에 열받은 필자는 백소령에게 달려가 총을 돌려 달라고 했다. “너희 중대장이 애걸해도 안 돌려줬는데 병장 놈이 겁대가리 없이 찾아와 총을 달라고~당장 꺼져” 호통을 쳤다. “총을 돌려주십시요” “안돼! 당장 꺼져” “돌아갑니다만 한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계속 비상이 걸리는데 상부에 출동장비와 인원이 다른 이유는 주번사령이 총기 4정을 고의로 돌려주지 않기 때문이라 보고하겠습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쳐나오자 백소령은 “병장 놈이 소령을 감히 협박해” 하면서 파르르 떨었다.
백소령과의 악연은 장교식당에서 시작되었다. 인사과장인 그에게 전우들은 휴가를 다녀오면 답례를 했지만 필자는 하지 않았다. 일병 시절, 휴가 후 귀대했더니 백소령이 필자를 장교식당 취사병으로 발령내면서 “학력을 물으면 중졸이라 답하라” 명령했다. 새벽 5시부터 아침, 점심, 저녁까지 서울 유명음식점 출신 세프였던 고참을 보조했다. 하루 종일 찬물에 손을 담그다 보니 손등이 거북등처럼 두껍게 터서 갈라지고 피가 맺혀 글리세린을 더덕 발랐다. 어느 날 신임 소위에게 식판을 나르는데 “야 임마! 그 더러운 손으로 밥했어” 하면서 정강이를 걷어찼다. “손이 터서 수세미로 빡빡 문질러도 안됩니다” 했더니 “무식한 놈이 무슨 말대꾸야” 하면서 또 찼다. 그는 손 청결 검사를 한다면서 매번 지휘봉으로 손등을 때리면서도 항상 밥과 반찬을 더 달라했다. 한 대 맞으면 안 될 짓이지만 그의 음식에 침을 뱉아 보복을 했다. 힘들었던 7개월 식당 생활! 밥하러 군에 왔냐는 자괴감에 가장 힘들다는 수색대 근무를 자원해 진짜 용사로 거듭날 수 있었다. 평생에 라면 한번, 밥 한번 안 했던 필자는 세프에게 많은 요리를 배웠다. 칼질에 익숙해져 무 100개를 1시간 만에 채를 써는 실력으로 제대 후 김장 시 주위를 놀라게 했다. 웬만한 레시피는 다 외워 신혼 때 혼자 집들이 준비를 하고 일본 유학 시 기업 회장 부인들에게 한국요리 강습도 했다. 취사병이 가장 어려워하는 필기시험은 만점에다가 칼질도 달인이니 취사병 경연대회에 나가 입상해 포상 휴가도 받았다.
군 생활 35개월 28일! 정말 최선을 다했다. 취사병이나 전투병 생활도 가장 찬란한 젊음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제대일, 인사과장인 백소령에게 제대 신고를 했다. 신고가 끝나자 조용히 필자를 불렀다. 백소령은 필자에게 어설픈 차례 자세로 경례를 하더니 손목을 덥썩 잡았다. 필자가 당황해하자 “강병장! 자네는 내가 처음 본 가장 대단한 병사네! 고의로 괴롭혀 미안하네! 대학에 복학하면 열심히 공부해 큰 일을 하시게” 군 상사로서 감히 할 수 없는 솔직한 사과 한마디는 그동안 서먹했던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부당함 앞에서는 어떤 두려움도 없어야 하지만 자신의 그릇된 행동에는 상하를 불문하고 사과할 수 있는 용기는 이후 삶의 좌표가 되었다. 비상계엄 후 군인의 사기와 자부심은 추락했지만 군인은 국민의 아들이고 젊은 날의 우리이다. 필자는 교수, 기업회장 타이틀보다 애국충정으로 가득 찼던 푸른 시절, 작대기 4개의 병장 이력이 가장 정겹고 자랑스럽다. 지금도 제복 입은 소령 계급장을 볼 때마다 백소령님의 마지막 모습이 생각난다. “충성! 강병장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