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기 한국교원대 윤리교육과 교수

▲ 박병기 한국교원대 윤리교육과 교수

우리말에서 ‘개’라는 접두어는 본래 쌍스러움이나 설익음을 담고 있는 것이어서 일상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다. 내 어린 시절 기억에서는 개살구나 개복숭아 같은 말 정도가 떠오른다. 집에 있는 시큼하면서도 달콤한 살구나 복숭아와는 달리, 산기슭이나 벌판에서 야생으로 자란 과일들이었다. 호기심에 입에 물었다가 참지 못하고 내뱉어야 했다. 또한 쌍스러움은 강아지를 비속어로 표현하는 말에서 잘 드러났다.

그런데 요즘에는 조금 다르게 사용하고 있는 듯하다. 재미있다는 것을 과장하거나 강조하기 위해 ‘개 재미있다’고 하기도 하고, 맛있는 것을 ‘개 맛있다’고 한다. 그것과 연결되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민주당 이재명대표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개딸’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물론 ‘개혁의 딸들’의 약칭이라는 설명이 덧붙여지면 수긍이 되기는 하지만 찜찜함을 온전히 떨칠 수는 없다.

코로나19가 끝나갈 즈음에 학계에서는 꽤 알려진 미국 철학자 해리 프랭크퍼트가 쓴 책이 『개소리에 관하여』(이윤 옮김, 2023)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나왔을 때도 당혹감을 감추기 어려웠다. 영어의 비속어인 불쉿(bullshit)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지만, 그냥 영한사전에 있는 헛소리 정도로 번역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 비슷한 시기에 노르웨이 철학자 라르스 스벤젠이 쓴 『거짓말의 철학』(이재경 옮김, 2022)도 출간되었다. 거짓말과 헛소리가 철학적 관심의 대상으로 다시 떠오른 셈이다.

거짓말은 독일 철학자 칸트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였고, 일상언어를 분석하는 영미 철학자들은 다른 관점에서 우리가 왜 거짓말을 하는지에 관심을 가지기도 했다. 헛소리에 직접적인 관심을 가진 사람은 없었지만, 20세기 이후 우리 삶의 저변을 이루는 말과 대화, 이야기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그 부정적 측면 중 하나로 호출되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헛소리와 거짓말은 비슷해 보이지만, 헛소리의 경우는 참인지 거짓인지는 따지지 않고 대신 자신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되면 그 어떤 말도 할 수 있다는 막무가내의 자세로 차별화된다.

21세기도 어느새 4분의 1을 채워가고 있는데, 이 지구에 살고 있는 인간들의 삶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없다. 전 세계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음식이 충분한 데도 여전히 어딘가에서 많은 어린이들이 굶주림으로 고통받고 있고,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어야 하는 전쟁도 쉽게 끝날 줄 모른다. 그러는 가운데 몸으로 다가오는 기후 위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거짓말을 하는 트럼프가 다시 미국 대통령이 되었고, 러시아의 푸틴은 ‘우리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지 않았다.’는 헛소리를 반복하고 있다.

이렇게 헛소리와 거짓말이 섞이면서 우리의 귀를 괴롭히는 현상은 국내에서도 어김없이 발견된다. 법질서의 중심을 이루는 헌법재판소를 부숴버려야 한다는 헛소리를 광장에서 내지르는 사람들이 있고, 같은 당 사람들이 검찰과 내통해서 자신을 체포하려 했다고 말하는 거대 야당 대표가 있다. 그런 폭력적인 말들을 여과 없이 전달하는 것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언론을 장악하면서 우리의 하루는 더할 수 없을 정도로 피곤하고 지친다.

우리는 누구나 여러 이유로 거짓말을 할 수 있고 가끔 헛소리를 하게 될 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헛소리이고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서는 뒤돌아서서 후회하곤 한다. 어떤 목적 달성을 위해서도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결국은 자신의 인격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에서 작동하는 것이 바로 양심이고, 이 양심은 희미하지만 인간다움을 유지하는 최후의 보루이자 희망이다. 양심 불을 끄고 사는 것이 잘 사는 길이라는, 이 시대의 천박하면서도 유혹적인 목소리를 떨쳐내고 각자의 삶의 자리를 잘 지켜내는 것만이 보다 나은 삶과 사회로 향하는 출발점이다.

폭설과 강풍을 견뎌낸 산수유와 목련이 꽃을 피워내는 초봄의 여여한 굽이를 지나면서, 내 마음에도 저런 꽃 하나 피워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 꽃의 씨앗이 바로 양심이고, 그 양심은 헛소리와 거짓말에서 비롯할 가능성이 높은 비인간적인 폭력의 위협을 견뎌내면서 어느 순간 작지만 자신만의 향기를 간직한 꽃으로 피어날 가능성이자 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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