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기선 충북대 의대 명예교수
한국전쟁 후 세대는 복 받은 세대라고 생각한다. 전쟁의 참화를 직접 겪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그 폐허 속에서 자라난 세대이기는 하다. 여러 전쟁고아 친구들을 어릴 때부터 보아온 내가 그들 마음의 상처를 여전히 헤아릴 길이 없지만 말이다.
이태 전, 구순 노모께서 낡은 가위 하나를 내어 주셨다. 평생 당신께서 보관했던 아버지의 가위였다. 더 이상 사용하기 힘들어 뵈는 가위였지만, 끝이 어긋난 그 낡은 가위에 우리 삼남 일녀의 머리를 직접 잘라 주셨던 아버지의 손길이 배어 있었다. 살림을 아껴야 했을 그 마음이 느껴진다.
전쟁 직전 남한의 인구는 2천여만 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1945년 해방 이후 1949년 까지 일본, 만주, 북한 등지에서 약 2백여만 명의 한국인들이 남한으로 이주해 왔다. 이 시기의 연간 인구 증가율은 6.1% 만큼이나 높았는데 대부분 도회지에 정착하면서 급격한 도시화가 진행되었다.
6.25 전쟁은 1950년 6월 25일에 시작되어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이 체결되기까지 3년 1개월 동안 지속되었다. 전쟁 중 기생충은 물론, 결핵 같은 감염병이 만연하였고, 전쟁의 총 사상자는 2백만 명 이상에 달했다. 20만 전쟁고아 또한 해외로 입양되었다.
질병은 흔히 가난한 사람에게 더 치명적이다. 가난하여 교육을 못 받으면 병에 걸리기 쉽다. 질병과 빈곤, 빈곤과 교육, 교육과 질병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된다. 빈곤-교육-질병은 악순환 할 수 있어서 위험하다. 그 악순환의 수레바퀴는 역으로도 작용한다. 한 가지는 다른 두 가지를 함께 불러오는 것이다.
교육은 셋 중 가장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전후 빈곤과 질병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하였다. 초대 국부 이승만은 1948년 「헌법」제31조에 “모든 국민은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명시하고, 1950년 6월 1일 무상-의무교육 시행에 들어갔으나, 한 달 만에 6.25전쟁 발발로 중단되었다.
그러나 전쟁 중이던 1951년에도 초등교육 취학률은 86.2%였다. 당시 ‘의무교육완성 6개년 계획’은 총 학령아동의 취학률을 96% 목표로 한 것이었다. 이 계획의 추진을 위해 정부는 문교예산의 80%를 의무교육에 충당하였으니 그 진심이 지금도 느껴지는데, 천막교실에서의 수업도 마다하지 않았다.
개국 당시 단 하루라도 학교를 가 본 인구는 14%에 불과했다. 이런 나라에서 어떻게 자유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될 수 있겠는가? 원래 우리나라는 양반 지주계급의 남자만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딸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언제든지 팔아넘길 수 있는 요긴한 물건으로 취급당했다.
고급인력의 양산을 위해서 우남은 1950년대에 매년 평균 600명 이상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으로 유학을 보냈고, 하와이 한인기독학원 부지 판매금을 보태 미국의 MIT를 모방한 최고수준의 공과대학을 지향하며 인하대학을 설립하였다. 한미동맹을 근거로 미국에 보낸 유학생만도 2만 여 명에 달한다.
충격적인 것은 2013년 서울신문의 조사 결과였다. 고등학생의 69%가 6.25 전쟁을 ‘북침’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북침’을 ‘북한의 침략’으로 오해한 결과일 수 있지만, 그 자체로 우리 교육의 실패를 보여준다. 교육에 독버섯이 피어든 것이었나?
엊그제 아버지의 가위를 곰곰 살피다가 가위 손잡이에 고무가 삭아서 없어진 듯한 구멍을 발견했다. 그곳에 맞는 리벳을 박아 고쳤더니 가위 끝이 완벽하게 맞아졌다. 가위 날도 의외로 생생히 살아 있어 종이를 한번 잘라보니 놀랍게도 잘 잘려졌다. 사악-. 행복해진 마음으로 가위를 쥐고 잠들었다.
한류는 강한 것이다. 꿈속에서 밑도 끝도 없이 나는 다른 나라에 있었다. 영화를 찍었나, 제목은 ‘한류초한전’ 이었다. 한류를 앞세우고 모든 수법을 동원하여 나라를 접수하기 직전-영토 확장이 별건가, 스며들어 지배하고 살면 그게 영토 확장인거지-성난 군중에 쫒기다가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나는 죽었다. 분명... 마지막 씬-천멸한류-그렇게 못되게 굴다가는 천멸 당한다는 마지막 장면을 못 찍고 말았다. 문득 아버지의 손길이 느껴진다. 따스한 손길이었다. 내가 잠든 사이에 내 머리를 깎아 주신 것이 틀림없었다. 사각사각. 눈을 떠보니 아버지의 가위가 베갯머리에 놓여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