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수 국립청주박물관 관장
중국 한나라 때는 청동거울이 많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거울은 중국뿐 아니라 멀리 유라시아대륙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한반도 남부에서도 한나라의 거울이 많이 발견되는데, 가장 많은 것은 명대경銘帶鏡이라고 불리는 한자 글귀가 적힌 거울이다.
예나 지금이나 외국의 말과 글을 안다는 것은 지식인의 기본 소양이었고, 당시 한어와 한자는 동아시아 세계의 사람들에게 지금의 영어와 같은 느낌이었을 것이다. 한어와 한자를 잘 몰라도 아는 척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까? 한자 글귀가 적힌 명대경은 한반도 남부와 일본에서도 인기 있는 한나라의 동경이었고 출토되는 수량도 제일 많다.
명대경에 적혀 있는 글귀는 다양하지만 가장 흔한 것은 일광경日光鏡이다. 여기에는 ‘견일지광見日之光, 천하대명天下大明’이라는 글귀가 적혀있는데, ‘태양의 빛이 보이니, 천하가 밝아진다.’로 해석된다.
둥근 청동거울이 태양을 뜻하니, 이 거울을 가지고 있으면 천하가 밝아져 내 운도 풀릴 것이라는 믿음을 노래하는 내용이다. 연구자들은 태양을 군주로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군주의 성정으로, 세상이 살기 좋아진다.’로 해석될 것이다. ‘견일지광, 장무상망長毋相忘’이라는 글귀도 자주 보이며, ‘서로 잊음이 없다’로 해석되어 군주와 신하 사이에 신의를 담기도 한다.
임금에 대한 충성을 이야기하는 동경의 글귀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소명경昭明鏡이다. 한반도 남부나 일본에서도 자주 보이는 동경인데, 그 글귀는 아래와 같다.
내청질이소명內淸質以昭明 내면의 본성은 맑고 밝으며
광휘상부일월光輝象夫日月 밝은 빛은 해와 달과 같이 빛난다.
심홀양이원충心忽揚而願忠 마음은 홀연 고요해져 충성을 다하려는데
연옹세이불철然壅塞而不徹 그 마음이 가득 차 새지 않는다.
해와 달과 같이 빛나는 것은 군주이며, 충忠이라는 글자만 보아도 이것이 충성과 관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동경이 만들어지는 시기는 한무제를 전후한 시기로 진시황이 세운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인 진을 멸하고, 국가의 기틀을 다지던 시기였다. 그렇기 때문일까? 거울에는 군주에게 충성을 바라는 글귀로 도배가 된다.
하지만 한나라가 자리를 잡고, 거울에 적힌 글귀들이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다. 왕망이 신新을 건국하는 즈음, 사회가 혼란해진 틈을 타 민간에서 다양한 종교가 나타난다. 특히 도교의 신선은 인기가 있었고, 이와 관련된 글귀도 거울에서 자주 보인다. 대표적인 글귀는 아래와 같다.
상방작경尙方作鏡 상방에서 만든 거울로
진대호眞大好 진짜로 크고 좋다.
상유선인上有仙人 하늘에는 선인이 사는데,
부지노不知老 늙음을 알지 못한다.
갈음옥천渴飮玉泉 목이 마르면 맑은 물을 마시고,
기식조飢食棗 배가 고프면 대추를 먹는다.
수여금석壽如金石 목숨이 금석과 같다.
이 글귀는 맑은 물인 옥천과 대추를 먹으며 금석과 같은 수명을 가진 신선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노래하고 있다. 상방은 원래 왕실의 물품을 만드는 곳으로, 상방에서 만든 거울이라는 것은 왕실의 장인들이 만든 좋은 거울이라는 의미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글귀 외에도 신선과 관련된 서왕모, 동왕부 등도 거울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가 되었다.
그럼에도 이후 가장 많이 나오는 글귀는 ‘장의자손長宜子孫-마땅히 자손이 오래가리라.’, ‘가상부귀家常富貴-집안에 항상 부귀가 넘치리라.’, ‘수여금석壽如金石-목숨이 금석과 같으리라.’와 같이 자손, 부귀, 장수와 같은 개인적 바람들이다.
또한 저번 글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한나라에서 거울을 살 수 있는 재력가들은 주로 관직에 있는 이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바라는 ‘위지삼공位至三公-지위가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에 이를 것이다.’, ‘군의고관君宜高官-당신은 마땅히 높은 관직에 오를 것이다.’와 같이 높은 관직에 오른다는 글귀도 자주 보인다.
결국 거울에 적히는 글귀는 당시의 사회상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가장 많은 것은 개인적인 바람이다. 오늘 저녁 식사를 할 때, 수저에 혹시 글귀나 무늬가 새겨져 있는지 살펴보자. 아마도 목숨을 뜻하는 수壽, 복을 바라는 복福, 장수를 상징하는 십장생 등의 글귀나 무늬가 새겨져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염원은 그리 바뀌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다양한 염원을 담은 청동거울은 지금 특별전 ‘거울, 시대를 비추다’가 개최되고 있는 국립청주박물관에서 전시 중에 있다. 꼭 시간을 내서 과거 사람들의 바람을 살피고, 지금 내 바람은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질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