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영 시인

▲ 하재영 시인

“함께 춤춰요.”
댄스파티 열린다고 초대장을 받은 것은 봄이 시작하는 3월 초순이었다. 유난히 눈발이 심했던 지난겨울을 보내며 나는 육체와 정신이 나약한 상태였다. 세상살이가 내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나라 꼴을 보면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것이 무엇일까? 내 주변의 사소한 문제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서 나라 걱정하는 나 자신이 측은해 보이고 그런 모습이 싫었다. 더욱이 3월 하순 경상도 산불 피해 장면은 SNS상으로 남도에 홍매화 피었다는 소식 사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안타까웠다.
걱정과 두려움, 삶의 끊임없는 갈등이 거센 파도처럼 몰려왔다. 까탈스러운 혼돈의 시대에 접어든 느낌도 들었다. 유튜브와 뉴스를 멀리했다. 세상과 담쌓은 것은 아니지만 일상에 그런 생활방식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대신 주택 내 조성한 화단을 관리하면서 비가 내릴 때마다 흙이 흘러내리는 비탈에 담을 쌓기 시작했다. 옛날식 옹벽을 친 것이다. 기상이변에 따른 폭우에 대비하기 위한 예방 차원이었다. 3월 한 달을 공기로 잡고 오후마다 공사에 매달렸다. 삽과 괭이로 흙을 파고 그 흙을 날랐다. 무거운 돌을 옳기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수레를 이용하고, 지렛대를 이용했지만 땀은 비 오듯 쏟아졌다. 허리 다친다, 골절상 당한다, 주변 사람들의 잔소리를 들어가며 하나하나 돌을 옮길 때마다 나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의 고사성어를 떠올리고 떠올렸다. 작업하는 중간중간 2021년 완공한 집 주변 작은 화단을 살피는 일도 놓치지 않았다. 많은 꽃모종을 심었고, 그중 살며시 얼굴을 내미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작업 시작 며칠 후 지난 가을 심은 팬지도 피고 제비꽃, 머위도 꽃순을 내밀었다. 작업하면서 쉴 때는 꽃 앞에서 꽃들과 손을 잡고 춤을 추는 기분이었다.
석축을 거의 쌓아갈 무렵 산수유, 개나리, 백목련도 손을 내밀었다. 흘린 땀방울을 씻어주는 아름다운 손길이었다. 내친김에 돌로 쌓은 옹벽에 이어서 시멘트 벽돌을 구입하여 더 길게 축대를 쌓았다. 4월 초순 높이 1,5미터에 10여 미터 남짓 길이의 옹벽을 완공하였다. 몸은 피곤하고, 곳곳 작은 상처도 있었지만 만족스럽고 행복했다.
옹벽 옆으로 다시 작은 화단을 만들었다. 이미 주택 내 자투리땅 세 곳을 화단으로 조성한 상탠데 말이다.
손바닥만한 공간이지만 조성한 화단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꽃들이 자라고 있다. 채송화, 봉선화, 해바라기 그리고 외래어 이름을 가진 식물들. 세련되게 다듬어지지는 않았지만 봄부터 가을까지 곳곳에 식물은 자라고, 그것들은 제 분수에 맞게 꽃을 피우며 손을 내밀어 잡아준다. 어찌 그냥 지나가랴. 아침이면, 아니 틈만 나면 일부러 꽃을 찾고 꽃들과 춤을 추는 사람이 된 것이다. 거기에다가 지난겨울에는 실내에 들여놓은 화분 50여 개 중 몇 개에서 곱디고운 꽃을 피운 것들도 있었다. 열대식물인 부겐빌레아도, 천사의 나팔도 꽃을 피웠다. 꽃과 손을 잡는 일. 활짝 핀 꽃과 춤을 추는 일. 그것은 내게 난세의 시간에 활력을 충전하는 시간이다.
많은 시인, 화가, 음악가들은 꽃을 소재로 작품을 완성했다. ‘꽃과 함께 춤을’ 예측하기 힘든 혼란스러운 시대에 작은 꽃 몇 송이 앞에서 나는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위안을 받고, 내일을 여는 지혜를 찾는다. 순번을 기다리며 봄에서 여름으로, 여름에서 가을로 이어지는 화단의 꽃들이 보낸 초대장을 받고 그들과 바람을 피우는 이 즐거움을 아내는 아직 눈치채지 못했지만 들켜도 무방한 일이기에 마냥 신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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