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이 변호사

▲ 신영이 변호사

요즘은 소송에서 음성 녹음 파일을 제출하는 일이 흔하다. 전화 통화는 보통 통화 자동 녹음 기능을 설정해놓는 경우가 많고, 직접 만나서 대화하는 경우에도 핸드폰에 녹음 기능이 있어 언제 어디서든 녹음 어플을 눌러 녹음을 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음성 녹음(또는 통화녹음)은 모두 소송에서 증거로 사용될 수 있을까?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통신비밀보호법이다. 이 법의 내용은 쉽고 간단하게 말하면 ‘몰래 도청하면 형사처벌을 할 것이고, 몰래 도청한 증거(녹음)는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이니 증거로 쓸 수 없다. 그러니 몰래 도청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젠 대다수가 알고 있듯, 대화하는 당사자 중 1인이 다른 대화자 몰래 그 대화를 녹음한 경우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 아니다(아직 정정당당히 ‘지금부터 녹음하겠다!’고 선포하고 녹음해야 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분들이 있는데, 대화하는 당사자들은 각자 서로에게 비밀로 하고 몰래 녹음해도 된다!). 그럼 통신비밀보호법에 위반하여 형사 처벌받을 수 있음은 물론 증거로 쓸 수 없는 녹음은 뭘까?
대표적인 예가 대화에 참여하지 않은 제3자가 몰래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하는 경우다. 대화하는 당사자 간의 녹음이 아니기 때문에 통신비밀보호법이 금지하는 전형적인 경우라고 보면 쉽다. 그렇다면 대화하는 당사자 중 한 명이 몰래 대화를 녹음한 후 대화에 참여하지 않은 제3자에게 녹음을 들려주면 어떻게 될까?
내가 담당했던 사건 중에 이것이 문제가 되었던 적이 있다. 상간남녀(나는 상간남, 상간녀를 이렇게 줄여 부르곤 한다)를 상대로 한 불법행위 손해배상 사건이었는데(소위 상간녀‧상간남 소송이다), 원고인 우리가 제출한 증거 중에 피고 상간남과 지인 사이에 한 통화녹음이 있었다. 통화 내용 중에 피고 상간남이 지인에게 자신의 상간 사실을 자인하는 진술이 녹음되어 있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증거였다. 원고인 의뢰인과 소송 전부터 확실한 소송전략을 세워 큰 그림을 그리며 준비하였기에 확보할 수 있었던 결정적 증거였다.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제1항에는 ‘누구든지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이를 위반하는 경우 같은 법 제16조제1항에 의하여 처벌을 받도록 하고 있다.
이 사건의 경우 지인은 대화 당사자여서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한 경우’에 해당하지 않고, 설사 지인이 제3자의 권유나 지시에 따라 녹음하였다고 하더라도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녹음의 주체는 대화 당사자인 지인이므로 지인이 녹음한 것이지 제3자의 녹음 행위로도 볼 수 없다(대법원 2015도1900 참조).
다만, 의뢰인인 원고가 위 녹음된 파일을 듣게 된 것이 ‘청취’에 해당하는지는 문제될 소지가 있다. 그러나 최근 대법원은 ‘청취는 타인 간의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실시간으로 그 대화의 내용을 엿듣는 행위를 의미하고, 대화가 이미 종료된 상황에서 그 대화의 녹음물을 재생하여 듣는 행위는 청취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시(대법원 2023도8603 참조)하였다. 따라서 의뢰인인 원고는 지인과 피고 상간남 간의 전화 통화가 완료된 이후 그 전화 통화가 녹음된 파일을 재생하여 듣게 된 것이어서 감청에도 해당하지 않는다(인천지방법원 2022고합737참조).
결국 의뢰인은 큰 문제 없이 상간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위자료 2,500만 원을 인정받았다.
최근 배우자가 있음에도 많은 부정행위가 발생하고 있고, 이를 응징하기 위한 소송도 많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법률전문가의 조언 없이 느낌에 따라 증거수집을 할 경우 자칫 잘못하면 실수하여 피해자임에도 억울하게 형사처벌을 받게 되는 것은 물론, 힘들게 찾은 증거가 증거능력이 없어져 부정행위를 인정받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배우자의 수상한 낌새를 느꼈다면 법률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전체적인 소송의 큰 그림을 그리고 증거수집부터 철저하게 준비하기를 추천드린다. 가장 추천하지 않는 방법은 부정행위가 의심되는 배우자에게 ‘당신 바람 피웠냐!!’며 직접적으로 추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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