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병철 단양군 정무보좌관

방병철 단양군 정무보좌관
방병철 단양군 정무보좌관

단양은 말이 아니다. 기척이다. 체온이다. 돌의 숨이다. 먼저 스며들고, 나중에 발설된다. 돌이 먼저 움직이고, 침묵이 먼저 말한다. 말은 따라온다. 늘 늦게. 이곳의 침묵은 언어의 뿌리다. 땅은 오래된 숨결로 조용히 불붙는다. 그 불은 번지지 않는다. 내면의 층위를 따라 천천히 번역된다.
충북 동쪽 끝. 단양은 제천과 충주를 향해 산맥의 살결을 따라 깊이 스며든다. 소백산은 이마를 눕히고, 남한강은 느린 맥박처럼 흐른다. 산은 하늘 아래 깊은 주름을 새기고, 강은 돌 아래 시간을 감춘다. 이곳의 언어는 입술을 통하지 않는다. 기척, 온기, 미세한 떨림으로만 전해진다.
13억 년 지층. 다리안 연성전단대는 시간을 눌러 쌓는다. 단면은 굳은 기억의 결이고, 바람은 그 표면을 스치며 흔적을 새긴다. 물은 돌을 더듬고 곡선을 남긴다. 이곳의 시간은 선형이 아니다. 단양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름이 아니다. 감각의 박물지(博物誌), 꺼내 읽는 지층의 육필이다. 흙은 조용히 기억을 증언하고, 돌은 침묵 속에서 제 이야기를 꺼낸다.
석회암 지층 아래로 동굴이 자란다. 가곡면 못밭 돌리네. 꺼진 자리 아래에서 물방울 하나, 또 하나가 천천히 떨어진다. 그 느림은 시간의 또 다른 얼굴이다. 돌은 제 속도로 흔적을 남긴다.
단양은 그렇게, 견딤으로 완성된다.
단양은 지금도 빚어진다. 기술이 아니라, 감춰진 본능으로. 언어보다 감각이 먼저 닿고, 손끝은 기척을 기억한다. 단양의 언어는 흙빛이다. 말로 옮기면 사라지고, 감각으로만 가까워진다. 붉은 흙 위에 자라는 마늘은 껍질 속에 계절을 품고, 햇살과 흙의 반복된 손길 속에서 익는다. 이 땅은 곡식보다 먼저 시간을 일구고, 수확은 기다림이 응축된 침묵의 열매다.
소백산 기슭, 구인사. 종소리는 바람 골짜기를 타고 돌에 스며들고, 향냄새는 가을보다 먼저 계절을 알린다. 구인사는 단양이 감춰둔 마음의 중심. 언어가 닿지 못한 곳에 닿는 붉은 무늬다.
골짜기는 깊게 패였다. 사람이 지나간 결, 바람이 남긴 선, 고요가 눌러둔 주름이 차곡차곡 쌓인다. 그 틈 사이로 수양개의 바람이 흐른다. 머문 공기는 등을 돌려 스며들고, 돌은 그 흐름을 품는다. 말 없이 듣고, 견디며, 단단한 체온으로 응답한다.
단양의 우발레는 빛이 닿지 않아 더 깊어진 그늘이다. 사라지는 곳이 아니라, 잊히지 않기 위해 침묵이 자리를 지키는 장소다. 단양은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이해는 눈보다 손에, 귀보다 숨결에 가깝다. 걷는다는 건 나이테의 결을 더듬는 일이며, 멈춘다는 건 숨의 여백에 귀 기울이는 일이다.
단양은 붉다. 피보다 먼저 도착한 색. 몸보다 먼저 체온을 물들이는 언어다. 돌 아래, 흙 속, 숨결 틈에 스며든 붉음은 더 이상 풍경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본능을 불러내고, 기억의 기원을 흔든다. 단양의 붉음은 결국 인간의 색이다. 말보다 오래된 감각. 삶의 으뜸에 새겨진 무늬.
우리는 지금, 들숨과 날숨의 경계에서 그 오래된 붉은 무늬의 언어 앞에 서 있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