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기 한국교원대 윤리교육과 교수

▲ 박병기 한국교원대 윤리교육과 교수

우리 삶에는 기쁨과 슬픔, 고통과 쾌락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가능하다면 쾌락과 기쁨만을 맛보면서 살고 싶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고통과 슬픔은 불쑥 고개를 내밀어 자신들도 삶의 중요한 요소임을 일깨운다. 요즘처럼 봄꽃들이 분분히 지는 철에는 ‘꽃길만 걷기를’이라는 축복의 말이 절로 나오지만, 그 말 깊은 곳에는 언제나 꽃길만 같을 수는 없다는 진리가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슬픔과 고통은 통증을 수반한다. 눈가가 붉어지다가 왈칵 눈물로 쏟아지는 통렬한 통증도 있고, 견디기 어려운 불쾌감과 불편함으로 오래 지속되는 통증도 있다. 우리말에도 이런 통증과 관련된 말들이 여럿 있다. 욱신거린다거나 죽을 것 같다는 말들이 그렇다. 그러나 이런 표현들은 통증을 온전히 담아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너무 큰 고통은 아예 말로 표현할 수 없어 기껏 신음소리 정도로만 드러낼 수 있을 뿐이다.

고통은 다시 몸의 고통(pain)과 마음의 괴로움(suffering)로 나뉘어 다가오기도 한다. 몸의 고통은 자연으로서 몸의 흐름에 이상이 생겼다는 신호이고, 마음의 괴로움은 그런 몸과의 깊은 관련성 속에서 표출되는 정신적 흐름의 이상으로 표출된다. 이런 고통은 내밀한 것이어서 다른 사람이 짐작하고 헤아리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자신의 고통에 조금이라도 공감해 줄 수 있는 사랑을 갈구한다.

고통을 나눌 수 있는 사랑은 그런 점에서 인간다움의 원천을 이룬다. 그 인간다움을 토대로 취약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결핍성이 견딜만하게 되고, 다른 사람의 취약함을 보완해 주는 의미와 보람도 느낄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이런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은 주로 가족들이지만, 점차 연인과 이웃, 공동체 전반으로 확장되면서 ‘살 만한 사회’라는 이상에 조금씩 다가설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에서는 조금 다른 양상이 펼쳐지고 있다. 고통을 다루는 의료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달하면서 몸과 마음의 고통을 감당하는 공간으로서 병원의 비중 또한 급속히 커져 있다. 몸이 아프고 정신적으로 괴로우면 이제 병원을 찾아야 한다는 명제가 현실화된 셈이다. 통증을 중심으로 고통을 다루는 의료 기술은 의사들의 전문성 심화와 함께 날이 갈수록 발전하여 건강과 수명연장 모두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의사를 비롯한 의료인들은 이런 고통의 경감 과정에서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체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환자의 고통을 단지 피상적으로만 받아들이면서 돈벌이 수단으로만 생각한다면 어떻게 될까... 겉으로는 별 문제없이 진료와 치료가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자칫 고통의 근본 원인을 찾으려는 노력은 소홀히 하면서 단지 최신 기계와 약을 쓸 수 있는 도구로 인간의 몸과 마음을 바라보게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 의료 현실에서 이런 가능성을 온전히 배제할 수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이 운영하는 의원이나 큰 병원 모두 일정한 이익을 남겨야 정상적인 운영이 가능하다. 거기에 특히 의사라는 직업을 택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소득 기대 수준은 일반 직업인의 그것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아져 있기도 하다. 중요하고도 어려운 일을 하는 사람들이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는 것은 당연하고, 우리들은 그들의 기대 수준에 어느 정도는 맞춰줄 책임이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책임은 의사들의 직업윤리를 전제로 할 때에만 유효하다. 인간의 고통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대하는 의사는 그런 대우를 받을 자격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자칫 우리 사회 전반의 고통을 증가시키는 주체로 전락할 수도 있다.

고통은 인간 실존의 근원적 상징이다. 그리고 누군가 고통을 호소할 때 온몸을 기울여 들어주고 최선을 다해 덜어주고자 하는 손길은 삶을 지탱해 주는 핵심 요소이다.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더 크고 넓은 영역에서 고통을 덜어주는 일을 하는 의사를 비롯한 의료인들은 그런 점에서 소중한 존재자들이다. 조금씩이나마 해결될 기미가 보이기 시작하는 최근의 의료 대란이 이 고통이라는 삶의 상징을 되돌아봄으로써 근원적으로 해소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꽃비 내리는 시절의 하염없는 간절함을 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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