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영 청주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 김혜영 청주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아이돌이 되고 싶은 중학생 예빈이의 꿈을 담은 유튜브 영상. 예빈이의 꿈을 응원하는 댓글이 줄줄이 달린다. 장애가 있는 대영씨, 오늘 그는 어떤 일상을 보냈을까? 맛있는 요리를 하는 그의 모습이 담긴 영상에서 문득 깨닫게 된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2022년 시작된 ‘충북영상자서전’ 사업은 나이, 성별, 국적과 무관하게 충북도민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삶을 영상으로 남길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지금까지 1만5000여 명의 도민이 참여해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이제 유튜브 채널에 접속하면 우리 동네 이웃이 남긴 인생 이야기를 직접 보고 들을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영상자서전은 콘텐츠 생산 사업이 아니다. 도민 각자의 삶을 사회적 자산으로 전환하고, 개인의 기억을 지역의 역사로 확장하는 공공 기록사업이다. 한 어르신은 생전에 본인의 영상자서전을 장례식장에서 틀어달라는 뜻을 남기셨다고 한다. 가족들은 영상을 통해 고인의 생전 모습을 추억하고, 그의 삶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이처럼 개인의 기억이 아니라, 가족과 공동체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살아 있는 기록이 된다.
이 사업은 특정 세대에 국한되지 않는다. 충북의 한 중학교에서는 창의체험 수업으로 ‘부모님 인터뷰 영상 만들기’ 과제가 진행됐다. 평소 대화를 나누기 어려웠던 부모와 자녀가 영상제작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서로를 이해하고 교감하는 기회가 됐다. 가정 내 세대 간 소통의 계기가 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의미 있다.
무엇보다도 이 사업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평범한 사람의 삶에도 기록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사회적 인식을 확산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유명 인물만이 자서전을 남길 수 있다는 통념을 넘어, 누구든 자신의 삶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러한 기록의 기회는 충북도민 개개인의 삶을 지역의 공동 기억으로 연결시켜 준다.
더 나아가, 도민들의 개별적인 이야기를 체계적으로 큐레이션하는 방향도 함께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주제별, 시기별, 지역별로 영상을 분류하고 묶음으로 구성한다면, 단편적인 일상을 넘어 집합적인 기억으로 확장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청주의 옛 담배공장이자 현재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변모한 문화제조창을 중심으로, 당시의 노동자, 인근 마을 주민, 인근 학교 학생들의 구술을 함께 엮으면, 하나의 공간을 둘러싼 다층적 기억이 구성된다.
물론 이러한 기획형 기록은 시간과 자원이 필요한 작업이다. 그러나 3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1만5000여 명의 도민 기록을 축적한 충북영상자서전의 현재 성과를 고려할 때, 보다 계획적이고 심화한 구술 프로젝트 역시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정책적 의지와 지역사회의 지속적인 참여가 함께 뒷받침 돼야 할 것이다.
앞으로는 중학생의 열정, 다문화 가정의 희망, 중장년층의 분투, 노년의 회고처럼 삶의 다양한 층위를 담은 이야기들이 더 많이 기록되길 바란다. 이는 충북도민 스스로가 충북이라는 공동체의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데 기여하는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다.
이제 자서전은 더 이상 일부 인물의 특권이 아니라, 모두의 권리이자 기회다. 충북영상자서전은 이 권리를 현실로 만드는 공공 플랫폼이며, 도민 누구나 ‘기록의 주체’로 설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문화인프라다. 충북도민 각자의 삶이 기록되고, 연결되고, 기억되는 이 흐름이 지속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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