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항일 충북농업기술원 홍보지원팀장
챗GPT로 농경문화에 대한 기고문을 작성하다 문득 심심이가 생각났다. 휴대폰 속 노란 친구, 심심이. 장난스럽고도 따뜻했던 그 챗봇은 나에게 사람이 아닌 컴퓨터와 대화하는 재미를 처음 알려준 존재다. “심심아 뭐해?”라고 물으면 때로는 엉뚱하게, 때로는 진짜 사람처럼 대답하던 그 모습이 떠오른다. 디지털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한 지금,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AI와 대화하며 정보를 주고받는다. 하지만 심심이와의 기억은 빠르게 흘러가는 기술의 시대 속에서도, 옛것이 지닌 정서와 가치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한다.
스마트폰과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에 익숙한 아이들에게도, 농경문화는 신선한 감성을 자극할 수 있다. 단순한 옛이야기가 아니라, 자연과 사람이 조화롭게 살아온 삶의 철학이 담긴 귀한 유산이다. 봄이면 대지를 일구며 희망을 심고, 가을이면 풍성한 수확에 감사하던 우리 조상의 마음은 오늘날에도 깊은 울림으로 남아 있다. 특히 벼농사는 쌀을 중심으로 한 우리의 식문화와 정겨운 명절 풍습, 이웃 간의 따뜻한 정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줬다.
우리 선조들은 사계절이 뚜렷한 환경 속에서 자연과 소통을 통해 농사를 지었다. 절기의 변화에 따라 씨앗을 뿌리고 곡식을 수확하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을 살아왔다. 계절마다 변하는 자연의 미세한 변화를 세심히 관찰하고 존중하며 살아온 선조들의 지혜는 오늘날 우리에게 자연과 공존하며 살아가는 삶의 소중함을 다시금 일깨운다.
전통 농경문화는 협력과 배려의 정신도 가르쳐 줬다. 농번기가 되면 두레와 품앗이로 서로의 일손을 돕고 힘든 시간을 함께 이겨냈던 조상들의 삶은 진정한 공동체 정신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힘겨운 노동 속에서도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농촌 마을의 정다운 풍경은 삭막해진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깊은 그리움과 교훈을 준다.
농한기나 명절이면 마을 사람들은 모여 농사의 피로를 풀고 서로의 마음을 이어갔다. 투호, 제기차기, 굴렁쇠와 같은 전통 놀이는 공동체의 유대를 강화하며 함께하는 기쁨을 알려주는 소중한 문화였다. 이처럼 민속놀이는 단지 놀이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의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따뜻한 소통의 도구이자, 우리 역사와 정서를 지키는 아름다운 유산이다.
그러나 도시화와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농경문화의 가치는 점차 잊혀지고 있다. 농촌은 젊은 세대가 줄어들고 고령화로 인해 활기를 잃고 있으며, 도시의 아이들은 자연과 농촌의 따뜻한 정서를 경험할 기회를 잃어가고 있다. AI와 디지털 기술에 익숙한 세대에게 전통은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오히려 그 속에서 잊고 있던 감성과 공동체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농업은 이제 단순한 생산을 넘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자연의 소중함을 가르치는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이에 충북농업기술원은 잊혀져 가는 농경문화의 가치를 다시금 되살리고자 "17회 농업농촌사랑 푸른뜰 체험행사"를 개최한다. 행사는 4월 25일과 26일 양일간 농업기술원 잔디광장에서 열린다. 맷돌로 두부콩을 갈아보고, 떡메치기와 같은 체험을 통해 전통의 지혜를 몸소 느낄 수 있으며, 민속놀이와 다양한 창의적 체험을 통해 우리의 전통을 즐겁게 경험할 수 있다.
농경문화는 단순한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미래를 풍요롭게 하는 소중한 지혜의 보고이며, 공동체와 자연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디지털 시대에도 아이들 마음속에는 심심이 같은 친구, 그리고 자연과 사람을 잇는 따듯한 가치가 함께해야 한다. 이번 행사가 농경문화의 감성을 되살리고, 우리 모두가 함께 지켜나가야 할 전통의 가치를 되새기는 뜻깊은 시간이 되길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