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헨리 조각가김복진기념사업회장

▲ 오헨리 조각가김복진기념사업회장

대한민국 최초의 근대 조각가 정관 김복진(1901~1940). 올해는 그가 태어난 지 124년 되는 해다. 김복진의 고향은 청주시 남이면 팔봉리. 근현대 미술사에 주연급이지만 고향엔 그가 없다. 감나무 밭에 감이 안 보이는 풍경과 같다. 가족이 외면하는 기분. 참담하지만 김복진 선생은 고향에서 그렇게 잊혀졌던 존재였다.
40여 년 전 선생의 묘소와 생가가 발견된 이후 학술 연구와 논문이 발표되기 시작했고, 추모하는 미술인들의 기념사업과 미술제 등으로 인해 정관 김복진은 세상이 기억하는 인물이 됐다. 특히 청원군(통폐합 이전)은 김복진 기념공원 마스터플랜까지 마련했었다니 당시 관심이 얼마나 컸었는지 짐작이 간다. 그러나 정작 김복진 선생의 고향마을에 김복진은 없었다.
수십 년 버려진 폐가만 있었다. 한국 조각의 아버지요 스승인 김복진이 태어난 집이다. 닭장으로 쓰이며 참담한 수모를 당하고 있었다. 정관학미 모두가 외면했다.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몇몇 주민들이 서서히 분통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2025년 첫날. 뜻 있는 주민들이 모였다. 목적은 김복진의 환향. 김복진의 고향에 김복진이 돌아오게 하자는 뜻에 김복진의 고향을 한국 조각의 성지로 만들어 보자는 생각들이였다. 팔봉리 김복진 조각페스타조직위원회가 구성되는 순간이었다. 김복진 생가를 개방해 일단 교두보를 쌓고 전국 조각가들을 찾아다니며 설득. 한편 주민들에게 김복진 테마의 조각축제 사업 설명을 해나갔다.
시나 도가 관심이 없다면 주민들이 먼저 보여주자고 했다. 조각축제를 위한 건조장을 내줬다. 순식간에 15개 미술관이 생겼다. 봄엔 미술관으로 가을엔 건조장이 되는 농가 유휴시설 업사이클링이 됐다. 유명 조각가들을 초청해 김복진 생가의 현실과 고향마을 주민들의 의지와 열정을 보여줬다. 중견작가 35명이 참여를 신청했다.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최초의 조각가 마을에 최초의 건조장미술관 조각축제가 성사됐다. 문제는 예산도 없고, 지원도 없다. 빵원이다. 그 사이 자부심은 생겼다. 주민들의 의지와 열정은 더 강해져 우리 손으로 끝까지 하자고 결의했다. 서른다섯 명의 조각가들도 자비로 출품하겠단다. 지원은 없어도 애정은 풍성한 축제로 익어가는 중이다.
반면 조롱도 따랐다. 자기 땅값 올리려고 그런다는 둥 행사추진을 폄훼하고 심보를 부리는 세력도 있지만, 김복진이 124년간 이때를 기다리며 버텨왔던 것처럼 꿋꿋이 ‘팔봉리 김복진 조각페스타’를 성공시켜 시나 도에 주민들의 의지를 보여줄 것은 자명하다.
돈 한 푼 없이 주민들에 의해, 주민들을 위한, 주민들의 축제를 만들어 김복진의 고향에 김복진이 돌아오게 하자는 뜻이 오히려 세상을 감동시키는 일이 되고 ‘건조장미술관’이란 새 명소를 만들게 됐다.
소외지역 문화콘텐츠로도 훌륭하다. 마을 곳곳에 조각품이 세워지면 청주지역 문화관광사업으로도 충분한 테마가 될 것이다. 이때쯤엔 시나 도가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까 소망해 본다.
124년 전 이 마을에서 태어난 김복진 선생의 환향을 위해 벌이는 축제는 세상이 마을로 들어오는 놀라운 결과를 만들게 됐다. 팔봉리 주민들에게 박수와 응원을 보내주기 바란다. 주민들의 헌신과 노력만으로 이렇게 만드는 문화축제는 대한민국에서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박수 받아 마땅하다. 뜻 있는 시민들의 참여와 애정이 이 행사를 빛나게 할 것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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