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호 한국외대 명예교수
무르익은 봄으로 여름을 준비하는 싱그러운 계절 5월이 오고 있다. 지난 초겨울부터 우리를 휩싸고 도는 어지럽고 황망하고 두렵기까지 한 이 을씨년스러움이 계절의 여왕 5월을 맞아 따뜻하고 흐뭇하며 사랑이 넘치는 기쁨과 희망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가정의달 5월에는 작은 준비로 큰 보람을 주고받을 수 있는 많은 기념일이 있다. 미리미리 준비하고 연습해서 따뜻하고 흐뭇하고 사랑이 넘치는 5월을 만들어보자.
5월의 첫날은 근로자의날이다. 근로자가 없으면 기업의 생산활동이 이루어질 수 없고, 기업이 없다면 근로자의 일자리가 사라진다. 노사 간의 사회적 파트너십이 정착된 나라에서는 기업은 활기차고 근로자의 권익과 복지는 향상된다. 이번 근로자의날에는 고용주와 피고용자가 하나가 되어 두 손을 꼭 잡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았으면 좋겠다.
5월 5일은 어린이날이다. 이 땅의 모든 어린이가 맑고 밝고 푸르게 자라나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린이들에게는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주어야 하며, 숨 쉴 수 있는 틈을 충분히 마련해주어야 한다. 어른들의 지나치거나 그릇된 생각으로 내 주변의 어린이들이 아파하지 않는지 되돌아보는 어린이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5월 8일은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시린 어버이날이다. 자식은 알에서 깨어나고 둥지를 벗어나는 과정에서 부모의 가슴에 깊은 아픔을 남기게 된다. 자식을 낳고 길러 품에서 떠나보낼 때까지 어머니 눈가에는 눈물 마를 날이 없고 아버지 술잔의 반은 언제나 눈물이다. 어버이의 그 아픔은 효를 통해서만 치유될 수 있으며, 반드시 그렇게 치유되어야 한다. 올 어버이날에는 쑥스럽게 생각하지 말고 부모님을 꼭 끌어안아 드렸으면 좋겠다. 아주 쎄게 끌어안으면서 떨리는 목소리라도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라고 알려드렸으면 좋겠다.
5월 15일은 스승의날이다. ‘선생님의 똥은 하도하도 속이 썩어 개도 안 먹는다’는 말도 있고 ‘스승님의 그림자조차 밟지 않는다’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스승의 역할과 위상 모두 땅에 떨어진 지 오래며 그 상황이 거의 망국지경에 이르렀다. 스승의날에 학교 문을 걸어 잠가야 하는 이 슬픈 현실에 선생님도, 학생도, 학부모도, 그리고 교육 당국도 모두 고개를 돌리고 있다. 올 스승의날에는 학교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교실마다 스승의날 노래가 힘차게 울려 퍼지기를 기대해 본다. 곱게 접은 손수건 한 장, 정성 들여 포장한 초코파이 하나마저 막아버린다면 너무 삭막한 것 아닌가?
매년 5월 셋째 월요일은 성년의날이다. 매년 만 19세가 되는 젊은이들에게 성년이 되었음을 축하하고 성년 사회인으로 해야 할 역할과 책무를 일깨워주고자 만들어진 기념일이다. 성년이 되면서 많은 보호 조치들이 해제되고 의사결정이 훨씬 더 자유로워진 건 사실이지만 막 성년이 된 젊은이들이 마주하는 사회는 절대 녹녹지 않다. 진로 선택과 취업이라는 거대한 산을 넘어야 하고 곧이어 사랑과 결혼, 출산과 양육이라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올 성년의날에는 성년이 된 이 땅의 모든 젊은이에게 부모님과 가족은 물론, 이 사회와 이 조국이 그들의 든든한 뒷배임을 알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5월 21일은 둘이 하나 된다는 의미에서 부부의날이다. 사랑 하나만을 믿고 두 남녀가 한 가정을 꾸려가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사회가 되어 부부 관계가 흔들리고 가정이 휘청거리는 빈도가 높아졌다. 부부가 가꾸어가는 가정은 사회를 구성하는 핵이다. 개인주의가 팽배하고 경제의 비중이 커지긴 했지만, 아직도 변함없이 중요한 것은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굳게 지켜주는 부부간의 사랑과 배려와 존중이다. 올 부부의날에는 이제까지 당연하다 생각했던 모든 것들에 대해 기꺼이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로 집안에 환한 꽃을 피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가정의달 5월에 들어있는 여러 기념일 중 자칫 하나라도 지나치게 되면 민망함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러니 5월을 기다리며 미리 적어놓고 계획하고 또 연습하여 한 치의 어긋남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런 작은 마음 씀씀이가 5월을 더욱 싱그럽게 하고 나와 내 가족과 내 주변을 따뜻하게 비춰 줄 것이다.
나라 안팎의 을씨년스러움마저 말끔히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5월을 기다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