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수 국립청주박물관장
거울과 관련해서 몇 번인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가장 기억나는 것은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우리 어머니께서 나에게 깨진 거울에 얼굴을 비추어 보지 말라 하신 것이다. 아마도 깨어져 날카로워 다칠 수 있으니 만지지 말라는 것이려니 했지만, 깨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상상하니 약간 괴기스러운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다른 하나는 엄청 일 잘하는 선배가 나에게 조그만 손거울을 책상머리에 놔두라 한 것이다. 그리하면 뒤돌아보지 않고도, 내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있고, 나쁜 기운도 도망가 좋은 일이 생긴다고 하였다. 혼자 사무실을 지키는 관장이 된 지금도 내 책상머리엔 손거울이 놓여 있다.
중국 허베이河北 능산陵山에서 두 개의 무덤이 발굴되었다. 바위를 파서 만든 이 무덤은 한나라 중산정왕中山靖王 유승劉勝과 그 아내인 두관竇綰의 것이었다. 『사기史記』와 『한서漢書』에 따르면, 유승은 전한 경제景帝의 아들로 한군현을 설치한 무제 원정元鼎 4년(기원전113년)에 사망했다. 그의 처인 두관은 유승보다 조금 늦게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유승과 두관은 모두 금실로 꿴 옥의金縷玉衣를 입고 있었다. 이 중 두관에게는 청동거울이 3점 있었는데, 지름 20cm 정도의 거울 두 개는 화장용기漆匳에 빗과 함께 담겨 있었고, 지름 5cm 정도의 작은 거울은 옥의를 입은 두관의 왼손에 쥐어져 있었다. 손거울로 사용하기에도 작은 크기인 이 거울은 아마도 두관의 시신을 지켜주는 부적과 같은 것으로 생각된다. 청동거울은 금속이 가진 광택과 빛을 반사시키는 특징 때문에 태양을 상징하였다. 태양을 손에 쥐고 있으니 당연히 어둠과 사악함이 접근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지금은 오송역이 들어선 청주 정중리 일원에서 이상한 무덤이 발굴되었다. 부부합장묘라고도 하는데, 하나의 구덩이를 파고 거기에 두 개의 관을 넣은 무덤이었다. 이러한 것은 대체로 중국 전한시대 후엽부터 만들어지는데, 한반도 남부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생각하는 부부합장묘라면 별도의 구덩이를 파서 각각 무덤을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오송에서 이러한 합장묘가 발견되었다. 물론 동시에 두 명을 묻은 것이 아니라, 한 명을 먼저 묻고 다음 사람을 나중에 묻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원래 여기 무덤이 어떻게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을 정도였으니 그 두 무덤을 만드는데 시간은 그리 차이 나지 않았을 것이다.
기원전 3세기경에 만들어진 이 무덤에서는 한국식동검을 비롯한 다양한 청동기가 출토되었는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아주 잘게 깨어진 다뉴세문경이었다. 발굴보고서에는 다뉴세문경이 출토된 위치가 표시되어 있지 않은데, 발굴한 이에게 물어보니 처음에는 조그만 청동 편이 여러 점 나와서 계속 모아두었는데 그것을 합치니 하나의 큰 다뉴세문경이 되었다고 한다.
청동거울 조각들은 아마도 시신을 담은 목관 위에 뿌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시신을 안치하고 빛과 태양을 상징하는 거울 조각을 뿌려, 무덤 주변에 사악한 기운과 어둠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전라남도 완주 신풍 유적에서도 확인된다.
이렇듯 거울을 깨뜨려 무덤에 넣는 경우는 자주 보인다. 그럼 왜 이렇게 깨뜨려 무덤에 넣었을까?
첫 번째 이유는 죽은 이가 쓰던 물건을 깨뜨려 저승에 함께 보낸다는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일본의 아이누족들 역시 장례를 치를 때 무덤에 넣는 물건들은 저승으로 보낸다는 의미로 다 깨뜨린다고 한다.
두 번째로 죽은 이가 이승에 대한 미련을 가지지 않도록 하는 일종의 보호 장치였을 것이다. 무덤을 만들고 장례를 치루는 마당에 대부분의 이들은 죽은 이가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특히 죽은 이의 부와 권력을 이어받은 상속자들은 더욱 더.
세 번째로 귀한 다뉴세문경을 가지려고 무덤을 파는 도굴꾼을 방지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한곳에 계속 정착하며 생활하는 농경민과 달리 말을 타고 떠도는 유목민들은 더욱 그러했는데, 무덤이 있는 곳 근처에서 계속 살 수 없으니 무덤을 만드는 곳도 비밀로 하고, 무덤에 넣는 귀중한 것들도 깨뜨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 시절에 살아 보지 않은 우리가 생각하는 답은 이 정도이지만 어쩌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마음이라는 것이 항상 옳은 판단이나 명확한 이유를 가지는 것은 아니니까.
미신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손거울 하나 들고 다닌다고 해서 나쁠 것은 없다. 그것이 청동거울이라면 참 좋겠지만, 그것이 아니더라도 휴대폰에 비추어볼 수 있는 거울 스티커라도 하나 붙이고 다니면 좋을 것 같다. 그 거울에 비친 빛이 나를 광명으로 인도해 주는 부적이 될지 모르니...
꽃이 만발한 국립청주박물관에서 특별전 ’거울, 시대를 비추다’를 개최하고 있다. 여기에는 다양한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거울이 한데 모여 있다. 한반도 각지에서 출토된 청동거울과 이건희가 수집한 청동거울 등이 빼곡히 전시되어 있다. 꽃이 시들기 전 박물관에서 거울의 이야기를 들어보기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