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영 시인
자정 가까운 밤이었다. 버스터미널까지 마중 나온 아내에게 비가 왔었느냐고 물었다. 내리지 않았다고 했다. 집에 도착하면서 나는 4월 초 밖에 내놓은 화분을 살펴보았다. 한 주 동안 물을 주지 않아 시들시들했다. 그중 몇은 꽃이 맺혀 있었다. 비 올 때 받아놓은 물통의 빗물을 그 녀석들에게 듬뿍 주었다.
그러니까 화분을 실외에 내놓기 한참 전 지난해가 꼬리를 보일 무렵이었다.
아내는 내 항공사 적립 마일리지를 12월까지 예약하지 않으면 소멸된다며 4월에 비행기표를 끊겠다고 했다. 지난해에도 마일리지 차감으로 비수기를 이용해 일본 북해도를 찾았었다. 혼자 떠난 8일간의 기차 배낭여행이었다. 그때를 떠올리며 일본을 선택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어느 날 아내는 내가 안 가본 나고야행 비행기표를 예약했다고 했다.
3월 말에서야 나는 내가 4월 하순 일본에 가야 함을 인식했다. 부랴부랴 지도를 넘겨보았다. 오키나와를 비롯하여 일본을 10여 차례 갔었지만 나고야와 그 인근 도시는 처음 찾는 곳이었다. 출발 한 주 전 호텔 예약과 버스표를 인터넷으로 예약하였다. 일행이 있는 것도 아니고 혼자 떠나는 여행이기에 구속받을 일도 없었다. 럭비공 튀듯 이쪽저쪽 다니면서 맘 내키는 대로 구경하겠다는 심보였다. 그럼에도 알차게 보내기 위한 궁리는 멈출 수 없었다. 13년 전 지역신문에 연재한 여행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터키와 그리스를 다녀온 후였다. 신문사에서 기행문을 10회에 걸쳐 써달라고 했다.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장거리 여행이 대중화되지 않았던 때였다. 관심이 높았는지 2회 더 연장해 달라고 했다. 한 지면을 글과 사진으로 꾸미는 시원한 구성이었다. 연장분으로 터키에서 맛본 음식을 쓰는데 쓸만한 사진을 찾을 수 없었다. 이실직고(以實直告)하자면 그 이후 나는 어디를 가든 음식 사진을 찍는 버릇이 생겼다.
문제는 딱딱한 것을 씹지 못하는 최근 내 치아 상태였다. 임플란트 수술로 윗니를 뺏기 때문이다. 집에서야 믹서기로 음식을 갈아먹지만 밖에서는 부드럽고 연한 메뉴를 골라야 했다. 그럼에도 먹을 때마다 음식 사진을 찍는 것은 이번 여행에서도 과제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매일 2만 보 이상을 걸었다. 대부분 일본 여행이 그렇듯이 고성과 유적지, 시장, 박물관, 미술관을 관람하는 코스였다. 거기에 문학인으로서 책이 있는 서점과 도서관을 둘러보는 것도 놓치지 않았다.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도착한 다음 날 이른 새벽이었다. 평상시 습성처럼 주택 내 화단과 화분을 살펴보는데 화단의 으아리꽃이 활짝 피어 나를 반겼고, 그 곁에 매발톱꽃도 만개했다.
꽃을 보며 여행 중 만난 꽃을 떠올렸다. 나고야, 가나자와, 도야마, 다카야마 거기에다가 다카야마에서 패키지로 선택한 세계문화유산 아이노쿠라와 시라카와고에서 만난 꽃들. 여행지는 지역마다 독특한 꽃과 향을 갖고 있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꽃은 가나자와에서 만난 꽃이었다.
가나자와 여행 두 번째 날, 가나자와성을 거쳐 켄로쿠엔 정원, 그리고 21세기 미술관을 둘러보고 나왔을 때였다. 갑자기 내 눈앞으로 충남 예산 출신의 윤봉길 의사가 떠올랐다. 가나자와에 윤봉길 의사 순국비, 암장지가 있다는 것을 신문에서 오래전 읽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구글 지도를 검색해 보니 미술관에서 먼 거리였다. 일본인에게 물어보니 멀뿐만 아니라 버스를 갈아타야 하고, 내려서 한참 걸어야 한다고 했다. 도야마로 가는 차표 시간을 보면서 나는 얼른 택시를 잡았다. 정말 생각보다 멀었다. 시 외곽 공동묘지에 있었다. 순국비와 암장지는 서로 떨어져 있었다.
찾는 사람은 나 하나였다. 조용히 참배했다.
오늘 우리나라를 있게 한 우리 민족의 꽃 한 송이를 그곳에서 보았다. 그러면서 여행 내내 내 머리를 채우는 화두 하나를 나는 끌고 다녔다.
나는 왜 그곳에 갔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