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용웅 수필가

▲변용웅 수필가
▲변용웅 수필가

조심스럽다. 내 집인 데도 소리가 클세라 문짝을 조심스럽게 여닫는다. 20년 넘게 살아온 과테말라시 인근의 내 안식처다. 기계 소음과 매연에 시달렸던 일터를 벗어나기 위해서 자연이 어우러진 자리를 찾은 산골이다.

도시 가장자리에 위치해 출퇴근길도 쉬웠다. 무엇보다도 내가 항상 그리던 숲속에 있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마을 이름도 정겨워 ‘Encinal’이란 스페인어로 ‘도토리 마을’이라는 뜻이다. 몇십 년 묵은 도토리나무가 밀림처럼 우거졌다.

아쉬운 것은 먼저 떠난 아내를 이런 곳에서 지내지 못하고 보낸 것이었다. 떠나기 전 몇 년 동안 휠체어에 의지했던 아내를 위해 움직이기 쉬운 단층집을 찾아다녔지만 찾지 못했다. 단층집이 있었지만 부자들의 집이라 너무 컸고 터무니없는 월세로 내가 감당하기에는 벅찬 수준이었다.

조금만 시가지를 벗어나도 이런 곳이 있는 것을, 도시 안에서만 찾다 보니 그리된 것이었다.

도시를 벗어나니 땅이 넓어 닭을 키워 유정란도 먹었다. 우리가 먹을 커피도 경작했다. 해발 1800m 고도에 자리하고 있으니 눈 아래로 펼쳐지는 과테말라시가 내 품 안에 있는 듯 만족스러웠다.

10년 전, 한국으로 터전을 옮겼다. 산수(傘壽)의 나이에 들어서니 건강에 적신호가 여기저기 터져 의료 수준이 제대로 된 고국으로 발길을 돌렸다. 아들이 내 사업을 이어받겠다고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고국에 자리를 잡았다. 1년에 한두 번은 사업장도 들려볼 겸, 그리운 얼굴도 보러 다녀갔다.

내가 떠나면 나와 같이 살던 아들은 응당 내 집에서 살 줄 알았다. 그런데 내 집과 멀리 떨어진 도시의 정 반대 방향에 아파트를 구입해서 이사를 했다. 습기에 예민한 아들은 숲속의 집이 불편했단다. 순간 내 흔적이 하나 내게서 날아가는구나 싶은 허탈감이 몰려왔다. 아들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20년 넘게 정들인 내 집이 사라지는 데는 서운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내 기분을 눈치챈 아들이 내 집을 ‘애어비앤비’로 만든단다. 내가 쓰던 본체 8각 정은 손님을 받고, 차고 2층에 방을 만들어 내가 오면 지낼 수 있게 한단다. 그러면 내 흔적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역시 내 마음을 알아주는 아들이 대견하고 믿음직스럽다.

작년에 그렇게 하겠다고 했는데 금년에 와서 보니 널찍한 방과 주방 시설, 샤워장이 훌륭하게 만들어져 있다. 아들은 건축과는 거리가 먼 데도 공장에서 나오는 제품을 바닥 완충재로 만들고, 창문을 여러 개 만들어 공간이 밝아 만족스럽다.

내가 없는 동안 손님을 몇 번 받았는데 오늘 들어오는 손님은 70일간 머문단다. 한 주 후면 우리는 떠나는데 어쩔 수 없이 불편한 동거가 시작된다. 캘리포니아에서 오는 미국인 60대 커플이 큼직한 반려견 테리어 한 마리도 데리고 왔다. 늘그막에 오랜 시간을 집에서 멀리 떠나 여유를 즐기는 모습이 한가로워 보인다. 과테말라 태생의 그들은 여기에 동생이 살고 있지만, 신세 지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하기야 두 달이 넘는 세월은 아무리 동생이라도 같이 지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애어비앤비는 적절한 안식처가 된다.

본체와는 30m 거리가 충분히 떨어져 있지만, 그래도 조심스러운 게다. 알고 보니 입주자에게 건넨 주의사항에 주차장 쪽으로는 출입할 수 없다고 못 박아 놓았단다. 대문은 같이 사용하지만, 일상 공간은 엄연히 구분해 놓은 것이다. 그래도 한 울타리 안에 전혀 모르는 사람이 같이 산다는 것은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이 사는 공간은 일하는 바깥세상과 가족과 함께 지나며 휴식을 취하는 집으로 나뉜다. 오늘 에어비앤비에 들어온 사람은 퇴직 기념으로 자신의 안락한 쉼터를 떠나 이곳으로 온 게다.

손님이 자신의 집인 것처럼 편안하게 지내기를 바란다. 내가 주인이 아니라 같은 처지의 손님이 된다. 문을 살짝 소리 안 나게 닫자.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 이렇게 신경 쓰이게 하는 줄 미처 몰랐던 것은 너무 주인행세만 하며 살아온 탓이다. 한 주간 나도 기꺼이 손님이 되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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