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섭 효성병원 신경외과 전문의

▲ 김희섭 효성병원 신경외과 전문의

최근 몇 년간 특히 1~2년 사이에 번개탄을 피워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응급실로 내원하는 환자의 수가 눈에 띄게 많아졌다. 한 20대 청년은 우울증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차안에서 번개탄을 피워 극단적 시도를 했다. 그는 극단적 시도를 의미하는 전화 메시지를 가족에게 보낸 후 자살을 시도했으나, 찾아나선 가족에 의해 발견되어 응급실로 이송되었다. 병원 도착 당시 의식이 혼미한 상태였으며, 혈중 일산화탄소 헤모글로빈(CO-Hb) 수치가 40% 이상으로 치명적인 수준이었다. 급히 고압산소 치료(Hyperbaric oxygen therapy)를 통해 목숨을 건졌으나, 이후 기억력 저하와 감정 기복 같은 후유증을 겪고 있다. 또 한명의 40대 남자는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원룸에서 극단적 시도를 하다가 방문한 이웃에게 발견이 되어 응급실로 이송되었다. 창문을 비닐로 가리고 치밀하게 준비를 하였으나 빨리 발견이 되었기 때문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환자는 초기 고압산소치료, 입원 후 집중치료 시행하여 의식도 회복되고, 마비증상 없이 보행도 가능한 상태였다. 하지만 10일 정도 후부터 인지기능과 운동기능이 조금씩 나빠지면서 진행되어 집중치료 중에 사망하였다.
일산화탄소는 혈중 헤모글로빈 단백질에 산소보다 훨씬 더 결합을 잘하여 우리 몸 조직에 산소공급을 못하게 함으로 증상을 나타낸다. 특히 우리 몸 중에 뇌로 가는 혈액량이 많고, 뇌의 산소요구량이 가장 많기 때문에 뇌기능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지고 온다.
특히 대뇌는 신경세포가 모여 있는 껍질 부분, 대뇌피질과 신경신호 전달의 전기도체 역할을 하는 대뇌백질로 나뉘는데, 산소가 많이 필요한 부분이 대뇌 피질이며, 따라서 일산화탄소 중독은 대뇌피질에 영향을 많이 미치게 된다.
연탄과 숯을 포함해 번개탄은 불완전 연소 과정에서 다량의 일산화탄소(CO)를 배출한다. 밀폐된 공간에서 이를 흡입하면 산소 공급이 차단되어 의식 저하 및 사망에 이르게 된다.
경미한 중독(10~30% CO-Hb)은 두통, 어지러움, 메스꺼움, 집중력 저하의 증상을 일으키고, 중등도 중독(30~50% CO-Hb)은 의식혼란, 운동 실조, 의식 저하를 일으키며, 중증 중독(50% 이상 CO-Hb)은 혼수상태, 발작, 심장 마비, 사망에 이를 수 있고, 설령 생존하더라도 저산소성 뇌손상으로 인해 기억력 저하, 우울증, 신경학적 후유증이 남을 수 있다.
일산화탄소의 치료는 고농도 산소 공급, 고압산소치료(Hyperbaric oxygen therapy), 증상에 따라 수액 공급, 체온 유지, 호흡 보조 등의 추가적인 치료를 한다.
번개탄이 극단적 시도에 대한 수단으로 사용되면서 불을 피고, 불쏘시개 역할을 하던 처음의 쓰임새는 없어지고, 엉뚱한 시도에 사용되면서 ‘번개탄’이라는 이름이 주는 특유한 안 좋은 뉘앙스를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번개탄 사용, 구매 등을 엄격히 제한한 필요가 있고, 번개탄 판매시 경고문구를 부착하고 구매자의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 필요가 있다. 물론 여러 반론이 있을 수 있으나 번개탄의 긍적적 사용보다 부정적 사용에 의한 역효과가 많은 만큼 우리 사회에서 신속하고, 과감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본다. 물론 극단적 시도에 대한 심리상담 등 근본적인 원인예방과 대응방안이 우선되어야 하겠지만, 급한대로 수단이 되는 도구를 엄격히 통제하는 것이 시급해 보인다.
번개탄 자살은 단순한 충동이 아닌, 극심한 절망감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극적인 순간을 넘기면 도움을 받을 기회가 주어진다. 주변에서 작은 신호를 놓치지 말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따뜻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사회적·제도적 예방책을 강화하여, 소중한 생명을 지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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