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묘순 문학평론가
할아버지 산소에 할미꽃이 지천으로 피었을 것이다.
예쁜 할미꽃이 할아버지 산소와 그 주변까지 장관을 이루면, 할머니는 이 광경을 보시고 할아버지께서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아서 그렇다고 하셨다. 그래서 산소에도 할미꽃이 가득 피는 거라고, 싫지 않은 농담을 건네곤 하셨다.
해마다 봄이 오면 이 말 못할 광경이 미치도록 보고 싶다. 소주 한 병에 안주로 봄에 나는 가죽나물과 부추를 섞어 전을 부쳤다.
할아버지 살아계실 적, 나침반을 들고 당신의 가묘 자리에 앉으셔서, 명당이라고 기뻐하시며 말씀하셨다.
“내 산소 아래쪽에 누군가 몰래 산소를 만들어 두었다. 원래 할아버지 산소가 명당인데 아래쪽이 명당인 줄 알고 몰래 산소를 만들었으니, 앞으로 벌초할 때 몰래 쓴 산소도 같이 벌초하라”고 하셨다. 할아버지의 명령 같은 유언이니 거역하지 못하고, 이름도 성도 모르지만 우리는 해마다 그 산소 벌초도 같이 해주고 있다. ‘이곳이 명당이긴, 명당이네. 누군지도 모르고 자손도 찾지 않는 산소 벌초를 해마다 해주니….’ 이런 생각을 하며.
아뿔싸.
언덕을 올라 보니 할미꽃이 드문드문 피었다. 때를 잘못 맞추었나. 아니었다. 산소 가득 피었던 할미꽃이 산소 가장자리에만 가끔 피어있다. 아하. 성가시게 잡초가 난다고 둘째 오빠가 무슨 풀약을 했다더니….
할아버지 생각을 하며 보따리를 풀었다.
46년 만에 풀어본 보따리이다. 아니 가끔 잘 있나 풀었다 다시 뒤적거려 보긴 했다. 할아버지 유품 중 유일하게, 내가 소지하게 된 것을 보관해 놓은 보따리이다. 한지에 빼곡히 적힌 한자들…. 두루마리와 접이식으로 만든 필사본 책과 고서가 나온다. 보따리 속에 갇혀 있던 한풀이라도 하듯이 퀴퀴한 책 냄새가 훅 풍긴다.
보따리에는 한자와 아래아(.), 반치음(ᅀ), 옛이응(ᅌ), ㅂ순경음(ᄫ), 여린히읗(ᅙ) 등이 섞여있는 책이 간조롱이 자리하고 있다.
할아버지 유품 앞에서 물구나무를 서봤다.
1800년대에 태어나신 할아버지는 서당 훈장이셨다.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책이 귀하던 시절, 할아버지는 보고 싶은 책이 있으면 며칠을 걸어서 그 책이 있는 곳으로 가셨다. 당신이 먹을 쌀과 닥종이를 등에 지고 가셔서, 책을 다 필사할 때까지 머물렀다. 이 필사본 책은 그렇게 필사해 마련한 것 중의 일부일 것이다.
왜냐하면 삼동이 아저씨가 사랑방에 불을 너무 많이 넣어서 방바닥 과열로 불이 났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대부분 불에 타고 간신히 남겨진 유품이다. 그 불로 인해 책 가장자리에 군데군데 탄 자국이 남았다.
여기서 삼동이 아저씨를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매일 우리집 일을 주로 하였다. 그는 아침 새참 먹기 전까지는 굉장히 성실하고 부지런하였다. 그런데 새참과 함께 먹은 막걸리가 항상 문제였다. 막걸리를 마시고 나면 논두렁을 베고 잠을 자버리는 사람이었다. 그날도 논두렁 베고 잠을 잔 후, 집에 돌아와 졸면서 혹은 자면서, 사랑방에 장작불을 몽땅 쟁여 넣어 과열로 사랑방 장판이 타고, 불이 나버렸다. 그야말로 웃픈 이야기다.
맥없이 장황하였다. 보따리를 풀어본 이야기가 샛길로 달렸다.
할아버지의 유품 중, 불에 타다만 필사본과 고서를 챙긴 것은 언젠가 그 책을 읽고 해석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정지용에 빠져 아직도 그 일을 미뤄두고만 있다. 아마 나의 천성인 게으른 성격 탓일 것이다.
게으름뱅이의 하루가 저물었다. 할아버지가 무척 그리운 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