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가 급발진을 했고, 그 원인이 자동차에 있다는 강한 확신이 들 때 운전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운전자와 동승자가 이미 죽거나 다쳤고, 차에 치인 제3자의 인명손실까지 발생한 피해가 상당하지만 급발진에 대한 차체의 결함을 입증하기 위해 전문기관에 의뢰할 때 모든 비용은 본인 부담이다. 이런 현실에 운전자들은 좌절한다.
2022년 12월 강원 강릉에서 이도현(사망 당시 12세)군이 숨진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의 책임 소재를 둘러싼 민사소송에서 13일 법원이 제조사 측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전자제어장치의 결함으로 인해 급발진이 발생했고, 급가속 시 자동 긴급제동 보조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도현이 가족 측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사실에서 보듯 자동차에 수동 기어가 아닌 ‘오토’ 시스템이 장착된 이래 수십년간 발생하고 있는 급발진 사고는 모두 운전자 책임으로 귀결되기 때문에 두려움의 대상이다.
급발진 관련 형사소송의 경우 입증 책임이 수사기관에 있어 그 노력에 드는 비용을 국가가 부담하지만 민사 소송에는 원고가 그걸 책임져야 한다. 감정을 제대로 받으려면 국과수를 거쳐야 하는데 경찰 등 수사기관 협조가 없으면 개인 의뢰가 불가능하고 사설 감정은 거액의 돈이 들어가 피해자 입장에선 엄청난 부담이다. 자동차 결함 원인 입증 책임을 피해자가 져야 하는 제조물책임법 탓이다.
그래서 운전자들 사이에 자구책으로 마련한 대안이 자신의 돈을 들여 가속페달과 브레이크 페달을 촬영하는 블랙박스를 장착하는 일이었다.
현재 급발진 사고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실내용 페달 블랙박스 제품이 많이 나와 있고 많은 운전자들이 장착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이렇게 많은 운전자들이 오래전부터 블랙박스를 장착해 왔는데 왜 아직까지 세상에는 자동차의 급발진을 증명하는 ‘빼박증거’ 영상이 등장하지 않았을까.
자동차 전문가 상당수는 피해자들이 주장하는 급발진이 사실은 가속페달을 밟은 운전자 실수이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급발진 의심 사고를 당하는 많은 운전자들이 자동차 회사에 민형사상 책임을 묻기 위해 사고 직후 블랙박스를 살펴봤지만 실제는 운전자 자신이 브레이크가 아닌 가속페달을 밟은게 확인돼 영상을 굳이 내놓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유추해 보면 이런 주장도 일리가 없는건 아니다.
그렇다면 급발진에 대한 대안은 확실하게 답이 나온다.
즉 사후 수단에 불과한 페달 블랙박스를 장착하기보다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를 만들어 부착하도록 법과 규정을 만들고 자동차 제조회사도 거기에 집중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는 자동차가 비정상적으로 가속해 질주할 경우 센서가 스스로 그걸 감지해 엔진 출력을 강제로 제한하는 방식이다.
일본에서는 이미 2012년부터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를 달았는데 그 덕분에 급발진 사고가 10년간 절반이나 줄었다고 한다.
개인들이 가속페달과 브레이크 작동상태를 확인‧촬영하는 블랙박스를 다는 것은 운전자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만 차체에 기본적인 안전장치를 부착케 하는 것은 정부가 나서야 한다.
운전자들이 조금이라도 불안한 마음을 가지지 않도록 정부와 차량 제조사들이 제도적으로 할수 있는 방안을 더 적극 시행해 줄 것을 요청한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