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뜬 아침, 오늘도 어제 덮고 잔 이불 속에 있는 게 한없이 행복하다. 신께 감사하다.”
계엄이 해제된 지난해 12월 어느날, 모 정치인이 한 말이다. 군부대의 음습한 지하공간이 아니라 안방에서 맞는 아침의 평화가 한없이 기쁘다고 했다. 당연한 일상마저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 현실은 생경하다.
공주시 지역내 유림(儒林)이 19일 “시민에 수치심을 준 박수현은 각성하라”는 현수막을 시내 곳곳에 붙이며 ‘내란 수괴의 고향’에 대한 논쟁이 불붙었다.
박수현 국회의원이 자신의 SNS계정에 “공주가 내란수괴 윤석열의 고향이라는 치욕을 씻자”고 한 표현을 두고서다.
박 의원은 “윤석열이 지난해 계엄선포 딱 하루 전 공주에 찾아와 아무일도 없는 것처럼 위장 쇼를 하고 간 행위는 시민 모욕”이라고 맹 비난했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은 ‘내일 계엄이야, 당신들 다 끝장이야’라는 머릿속 본심을 숨긴 채 공주를 누볐다.
하루 뒤 ‘계엄 내란’이 터질 줄 꿈에도 몰랐던 시민들은 ‘대통령님, 고향 방문을 환영합니다’라고 쓴 현수막을 펼치며 환호했다. 호구 됐다.
유림은 박 의원의 글 중 “이재명이 이 치욕을 씻는 ‘수건’이 될 것”이라고 한 부분을 문제 삼았다. ‘공주시민이 수건으로 씻어낼 오물이냐’는게 유림의 주장이다.
귀신이 양잿물을 마셔도 그런 헛소리는 안한다. 지역민 ‘표’가 생명인 국회의원이 시민을 오물로 여겼을리도 만무다. 박 의원 글의 맥락은 공주시민의 자존심 회복이다. 윤 전 대통령의 ‘오물 같은 시민 모욕 행위’를 선거로 씻자는 의미이다. 문해(文解)도 필요없는 문장 구조다.
계엄에 의한 충격과 패닉은 국민 모두의 고통이지만 공주시민들은 특히 머리를 향해 공을 날린 야구의 ‘헤드샷’에 직격 당했다. 지금도 계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시민들이 많다.
문제는 그 이후다. 헌재의 만장일치 파면 뒤 지금까지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중앙당, 공주시당 누구도 그날의 위장쇼를 사과하지 않았다.
더구나 윤 전 대통령을 대선에 해가 된다는 이유로 당에서 사실상 쫓아낸 국민의힘이다. 그만한 태세전환의 패기를 '양심'으로 치환해 보면 '공주시민 기망' 부분에 대한 사과도 벌써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생쥐도 시행착오를 통해 미로 속에서 길을 찾아가는데 국민의힘은 여전히 그런 자기고백조차 할줄 모른다. ‘다만’이 아닌 ‘나만’ 악에서 구하소서이다. 이 사람들 머릿속도 참 신천지다.
보다못한 지역 정치인이 나서 이런 ‘공주시민 모욕 행위의 때’를 씻어내자고 주장하는건 하등 이상할게 없다. 여야를 떠나 공주시민 모두 분개해야할 자존심의 문제이며 공감이어야 한다.
박 의원의 SNS 계정 글은 개인의 해원이긴하나 ‘공정’한 명분이다. 자기 경험을 신파로 몰고 가지 않고 말의 낭비가 없는 신뢰의 밑천이기도 하다.
고름은 살이 되지 않는다. 고름이 무서워 반창고로 숨겨두면 병이 더 깊어질 뿐, 썩은 살은 도려내야 한다.
국민의힘이 진정성있게 사과해야 공주시민들의 내상이 아문다. 그래야 지역정치인의 쓴소리도, 그 말을 오해해 시민단체가 비난하는 소모적 다툼도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