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양 청주시 서원구 남이면 팔봉1리 이장
팔봉리는 최초의 조각가 김복진의 고향이다.
이 사실을 주민들은 모르고 살았다. 40여 년 전 김복진이 대한민국 최초의 조각가이고 고향이 팔봉리란 말을 들었을 때 주민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김복진이란 존재를 알지도 못했으니 당연하다. 우리 마을에서 그런 위대한 작가 태어났다는 것은 분명 자랑스럽고 자부심과 긍지를 느낄 만했다. 전국에서 작가들이 몰려들었고, 당시 청원군 직원들이 수시로 찾아와 김복진 생가를 보존해야 한다며 손도 못 대게 했다. 군수도 찾아와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김복진 조각공원 조성과 생가 복원 등에 대한 마스터플랜을 설명하기도 했다. 마을은 크게 술렁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어떤 변화가 없었고, 처음과 달리 찾는 이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온갖 억측이 난무하고 실현성에 대해 의구심이 들면서 기대감이 무너지고 비난도 일었었다. 당연한 것이지만 그마저도 시간이 수십 년 흘러가면서 그 사이 주민들의 부풀었던 기대감은 흔적도 없이 무너졌고, 무관심으로 잊혔다. 가끔 찾는 이들이 있었지만 의미 없이 40여 년이 지났다.
올해 초 ‘팔봉리 김복진 조각 페스타’를 해보자는 제안을 들었을 때 40여 년 전의 트라우마가 있어서 과연 가능할지 자신이 없었다. 막상 원주민과 도시 이주민들이 김복진을 주제로 대화하니 우리 마을에 그런 위인이 있다는 사실에 고무되었다. 문화를 매개로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금세 공동체 형태의 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막상 시작하니 주민들의 의지는 폭발했다. 김복진을 자랑하면 내가 자랑스러워지는 걸 느꼈다. 김복진이 팔봉리의 정체성임을 깨닫는 순간이다. ‘김복진의 고향 팔봉리를 한국 조각의 성지로 만들자’는 목표가 자연스럽게 정해지고 전략이 수립되었다.
5월 17일 드디어 1회 ‘팔봉리 김복진 조각 페스타’를 개최하게 되었다. 봄철엔 사용하지 않는 계절 유휴공간인 건조장을 미술관으로 사용했더니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광경이 연출됐다. 건조장미술관이 유효했는지 기대보다 성황이었다. 개막식에 3백여 명이 넘는 인사들이 찾아 주셨다. 끊이지 않는 관람객에 주민들도 놀랐다. 성공할 조건도 좋다. 역사, 환경, 주민의 삼박자가 맞는다. 역사는 정체성이다. 최초의 조각가 김복진이 태어나 자란 곳이니 역사와 명분, 가치를 모두 가졌다. 환경은 건조장미술관과 산책하기 알맞은 골목과 규모가 명소의 조건이다. 마지막은 주민의 참여다. 가장 어려운 일이지만 팔봉리 주민들은 애정과 의지가 남다르다. 자발적으로 참여해 주고 칭찬과 응원으로 다독이는 어르신부터 이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산책하는 미술관이기 때문에 팔봉산과 어우러지는 야생화 꽃길과 벤치도 마련하고, 하룻밤 쉬고 가실 수 있는 민박 시스템도 구축해 주민의 손으로, 주민에 의해, 주민들이 즐기는, 주민의 축제가 있는 한국 조각의 성지, 김복진 조각가 마을을 만들어 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