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자 수필가

▲ 김애자 수필가

아픔은 몸과 직접적이다. 오랫동안 자가면역질환에 시달렸다. 이 병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세균이나 바이러스 등을 막아야 할 면역세포가 거꾸로 자기 몸을 공격하는 고약한 질환이다.

40대 중반부터 발병한 섬유조직염은 35년 동안 관절 마디를 파고들어 기형으로 돌출시켜 놓고, 몇 해 전부터는 피부가려움증으로 변신을 꾀하였다.

기후가 건조한 겨울철에 좁쌀처럼 자디잔 발진이 허리와 등짝에 돋기 시작하면 아무리 어금니를 앙다물어도 손이 어느새 발진이 돋은 부위를 긁어 상처를 냈다.

병원에서 처방해 준 스테로이드와 소염진통제와 신경안정제를 하루 두 번씩 복용해도 밤이면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럴 적마다 ‘차라리..’하는 충동이 일면 얼른 성호를 긋고 심장에 손을 얹었다.

생사의 경계에서 혼란을 겪던 차에 선배에게 책 한 권을 선물로 받았다. 호스피스 의사 김여환 선생이 쓴 <천 명의 죽음이 내게 알려준 것들>이다. 하루 만에 221쪽을 일독했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는 부끄러움에 한참 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호스피스 병동은 암환자들에겐 죽음을 기다리는 대기실이다. 이곳에서 환자들은 아무리 육체가 고통스러워도 피하지 않고 대결하면서 죽음이란 낯선 세계로 들어가는 순간을 온전하게 받아들인다.

그중에서도 나를 감동시킨 이는 쉰다섯 살 담낭암 말기 환자다. 그는 몸에 담즙을 배출하는 관과 소변 줄을 달고서도 눈만 뜨면 병동 구석구석을 닦으며 병실 분위기를 밝게 이끌어 갔다. 피부가 황달로 노랗다 못해 검게 변색 되었어도 얼굴에는 항상 미소를 띠고 쓰레기통을 비우고 다녔던 그는 현존하는 천사였다.

어느 날 혼자 임종실에 들어가 그림 한 점 걸려 있지 않은 벽을 보고 집으로 연락해 학이 그려진 대형 한국화를 가져다 걸었다. 썰렁하던 벽에 그림이 걸리자 임종실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몇 달 후에 그는 자신의 그림이 걸려 있는 임종실에서 평안하게 삶을 마감했다. 모르핀으로 육체의 고통을 견디면서 마지막 가는 길에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완성하고 떠난 그가 나를 몹시 부끄럽게 했던 것이다.

또 한 사람은 암세포가 턱을 침범해 턱이 없어졌다. 혀와 이빨만 흉측하게 드러나고 피골이 상접해 해부가 끝난 실습용 카데바와 다름없어도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은 건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참혹한 몰골로 죽어가면서도 가족애를 지켰던 그를, 저자는 우리 시대의 ‘그레고리 잠자’였다고 썼다.

암 말기에 이르면 환자들은 미라처럼 눈자위가 움푹 꺼지고, 사지는 뼈만 앙상하게 드러날 뿐만 아니라 스러지는 세포로 인해 몸에선 악취가 난다. 망가진 육체는 생명의 존엄성을 가차 없이 지워버린다.

이런 상황에 비하면 나의 아픔은 엄살에 지나지 않는다. 더구나 가톨릭 신자로서 가려움을 참지 못해 가족들은 염두에 두지도 않고 고통에서 벗어날 궁리만 했던 나는 죽기 전에 이미 죽은 존재였다. 그것을 자각하는 순간 스스로 질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론 내 몸이 아픈 대신 가족들 모두가 건강하다는 사실에 감사할 줄 알게 되었다. 아침이 돌아오면 하루를 선물로 받았다는 기쁨과, 저녁이면 하루를 무사히 살아낸 것에 대한 감사로 성호를 긋고 삼종기도를 바칠 줄 알게 되었으니, 나도 김여환 의사처럼 천 명의 죽음을 통해 참삶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배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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