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창 조각가·서울시 '조각도시 서울' 예술감독

▲ 이후창 조각가

조각은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 공간과 사람을 연결하는 매개체다. 나는 조각가이자 기획자로서 조각이 공공 공간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오랫동안 연구해 왔다. 과거 12년간 (사)한국조각가협회의 사무국장, 그리고 10여 년간 국내 최대 조각축제인 서울국제조각페스타의 사무국장으로 실무를 총괄했고, 현재는 서울시의 예술감독으로 '조각도시서울'을 통해 서울시 전역이 야외미술관이 되는 프로젝트의 총감독을 맡고 있다. 조각이 도시 환경을 재구성하고 사람들에게 보다 친근하게 다가가는 방법을 모색하고 도시와 마을의 공공 공간, 우리의 일상에 스며드는 예술 방식을 실현해 가고 있다.
그런 경험적 관점에서 바라본 이번 청주시 서원구 남이면 팔봉리에서 열린 '팔봉리 김복진 조각 페스타'는 조각이 단순한 예술 작품을 넘어 지역과 조화를 이루며 사람들의 삶속으로 스며들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 사례다.
특히 이번 축제는 조각을 활용해 지역 문화의 활성화를 시도하는 동시에, 공공 공간을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실험적 접근을 시도했다.

○조각이 지역을 변화시키는 힘
나는 그동안 다양한 조각 프로젝트 기획을 총괄하면서 조각이 공간과 사람을 연결하는 매개체로 기능할 수 있음을 확인했기에 이번 팔봉리 프로젝트는 문화소외지역에서도 같은 매개적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확신에서 '순환-음양(B)과 나비노리개- 염원'(적)·(청) 두 작품으로 팔봉리 김복진 조각페스타에 참여했다.
도시에서 조각은 공공미술로서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지만, 팔봉리에서는 그 의미가 더욱 확장 되었다. 이번 김복진 조각페스타를 통해 조각이 지역 사회와 융합하는 방식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으며, 마을 주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과정에서 조각이 지역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했다.
특히 건조장 미술관은 이 축제의 핵심적인 공간이었다. 봄철 유휴 공간을 활용해 미술관으로 재탄생시킨 이 공간은 팔봉리를 새로운 문화적 장소로 변화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조각 작품이 자연과 함께 배치되면서 마을 자체가 살아 있는 야외미술관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조각이 단순한 오브제가 아닌 지역 공동체의 일부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실감했다.

○김복진, 그리고 그의 유산
팔봉리는 한국 최초의 근대 조각가 김복진(1901~1940)의 고향이다. 그는 조각뿐만 아니라 문예운동과 독립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 예술가였다. 1920년 일본 도쿄 미술학교에서 조각을 공부했고, 이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여러 차례 특선을 받으며 한국 조각의 기틀을 다졌다.
그는 예술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했으며, 조각을 단순한 미적 표현이 아닌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도구로 활용했다. 이번 팔봉리 김복진 조각 페스타는 그의 예술적 정신을 계승하는 움직임이다. 조각이 단순히 전시되는 것이 아니라, 공간과 사람들의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 바로 이번 축제의 가장 큰 성과다.

○조각이 만들어갈 팔봉리의 미래
팔봉리는 단순한 조각 전시를 넘어서 조각을 통해 지역을 활성화하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크게 3가지 중요한 비전을 제시했는데, 첫째로 조각을 통한 지역 활성화를 구현했고, 둘째로 주민 주도의 예술 프로젝트라는 점이다. 셋째로 공간 활용의 확장인데 건조장을 미술관으로 재탄생시킨 것은 매우 참신한 시도였다. 나는 조각이 단순한 미술 작품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 속에서 살아 숨 쉬어야 한다고 믿는다. 팔봉리 김복진 조각페스타는 단순한 지역 축제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조각이 도시를 넘어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식을 탐구하는 새로운 단계다. 그 단계마저 넘어서 김복진의 고향 팔봉리가 조각가 마을로 세계적인 명소가 되고 한국 조각의 성지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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